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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인연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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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7.10 12:0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옥수수 한 자루를 선물로 받았다. 올 초순 냉해로 인해 과일들이 흉작이다. 우리지역에서 6월이면 나오는 체리를 손꼽아 기다려 선물도 주고 냉장고에 쟁여 놓고 먹었다. 그런데 단골집에서 문자가 왔다. 올해는 체리 수확을 하지 못했으니 방문하지 말라는 문자였다. 너무 서운했다. 얼마 전에도 토마토 농사를 짓는 분에게 연락을 했더니 올해는 수확이 많지 않아 개인에게는 토마토를 팔지 못한다고 한다. 상태가 그리 좋지 않는 토마토까지 도매로 팔려 나간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농사지은 옥수수 한 자루를 선물 받으니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옥수수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더위에 입맛이 없을 때도 한두 개는 뚝딱 먹는다. 우리 또래 사람들과 옥수수를 같이 먹다보면 옥수수에 대한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대상이 엄마이든 자매이든 친구이든 꼭 한마디씩 하며 먹는다. 그 만큼 여름의 대표 식품이다.

15년 전 쯤 인 것 같다. 남편이 운영하는 공장 앞마당에 처음으로 옥수수를 심었는데 그 즈음 일용직 근로자로 한사람이 왔다. 그 분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그 옥수수를 들여다보며 정성스럽게 키워내어 그해 여름 옥수수를 원 없이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 사람은 며칠이 지나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는 공장에서 점심을 준비해서 먹었는데 그런 때문 인지 말이 없던 그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불교에 심취해 있어 경전을 꿰뚫고 있었고 입을 열자 박식한 지식의 소유자임을 알았고, 뜻밖에도 좋은 대학을 나온 남자였다. 비슷한 또래였던 우리는 공통 화제가 많았고 점심시간이 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정식 직원을 하자는 것도 마다했다. 수행을 하려 다시 산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했는데 3달 남짓 다니다가 말도 없이 나오지 않았다. 그랬는데도 오래 기억이 나는 사람이어서 가끔씩 남편과 독특했던 그 남자에 대해 이야기 하고는 했다.

어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자신을 이리저리 설명했다. 그 남자 분이었다.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는 사람을 만났는데 전화번호부에 내 이름이 있어서 알려달라고 했단다. 어찌 지내는지 궁금했고 가끔씩 생각나는 좋은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남편에게도 꼭 안부를 전하라면서 금왕에 오면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가끔 생각나고 안부가 궁금한 사람이었다니 행복하다.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겁(劫)의 인연이 있어야 만난다고 한다. 겁이란 천년 만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집 채 만 한 바위를 뚫어 없애거나, 천년 만에 한 번씩 내려오는 선녀가 사방 3자의 바위 위에서 춤을 추어 닳아 없어지는 헤아릴 수조차 없는 길고 긴 시간을 말한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옷깃을 스치는 인연은 500겁의 인연이고 5천겁의 인연이 있어야 하루 동안 동행하는 인연이라고 하니 감히 짐작도 안 되는 시간들이다.

15년 가까이 다시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 하지 않았던 사람과 연락이 되었다. 얼마 전 중학교 동창이 찾아와 중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연락처를 주고 갔다. 통화를 했고 한번 만나자고는 했지만 약속도 잡지 않고 지내왔다. 또 대학 은사님과 30여 년 만에 다시 연락이 됐지만 가끔 카카오 톡으로 안부를 묻고 만 있다. 오늘 문득 그 사람들이 보고 싶다. 긴 세월을 뛰어넘어 그 시절의 감정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나에게 좋았던 인연들로 채우고 싶다. “관심을 가지면 인연이 되고 공을 들이면 필연이 된다”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공을 들여 봐야겠다. 그래서 살아오면서 좋았던 인연들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몇 천 겁의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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