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나의 소신 중 하나는 여생의 길이를 가늠할 수는 없어도 곱게 늙어야겠다는 것이다. 오늘보다 더 오래 살아 있어도 결코 경로당 문을 기웃거리지 않겠다는 스스로 다짐을 굳혀왔다.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정무직 공무원 시절 경로당에서 발생한 민원현장을 수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살만해져서인지 마을마다 아파트마다 잘 지어진 경로당 없는 곳이 없다. 소일거리가 마땅치 않거나, 추위나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나, 한 끼 식사를 불편 없이 할 수 있는 곳이 어른들의 공동체 경로당이다. 그런데, 그 안에서도 어른들의 다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할머니 경로당, 할아버지 경로당을 별도 공간으로 꾸며 생활하는 곳도 없지 않다. 개중에는 밝히고 싶지 않은 가정사로, 어떨 때는 동전 내기 화투를 치다가도 소소한 다툼이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환경과 모습을 보면서 다짐한 것이 내 나이 더 들어 걸음이라도 곧게 걸을 수 있을 때, 차라리 노인병원이나 요양시설 등을 찾아가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수년 전 고인이 되신 극작가 윤조병 선생님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선생님! 제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아직 철이 덜 든 것 같습니다. 가슴이 무디어질 때도 된 것 같은데 흘러간 노래만 들어도 눈물이 핑 돌고 그러곤 합니다.” “김 시인! 철없이 사는 게 좋은 거여. 철이 들면 일찍 죽는 거여…”
그때는 그저 농담이려니 흘려들었지만, 지금에 와서 말씀의 깊이를 들여다보니 그 뜻을 알게 되었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이 되어 무엇을 남기고 사라져갈까, 하는 지나친 욕심의 계산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인생 몇 걸음 더 간다고, 우렁이나 달팽이의 등딱지 같은 삶의 무게를 떼어내지 못하면 자신만 고달프다는 뜻으로 생각되었다.
대한민국의 암울한 현실 중 하나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문제이다. 2023년 현재 인구 중 노인 인구수가 90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의 18.42%의 수치이다. 앞으로 5년 후인 2028년에는 노인 인구가 1300만 명에 달하여 초 고령화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향후 15년 후인 2038년에는 노인 인구 비율이 2200만 명에 43%가 될 것이라 한다. 그때가 되면 젊은 인력 한 사람이 몇십 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현실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각성하고 정부와 국회는 지금부터 대책을 서둘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