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만치 또 강한 만치
약한 만치 또 강한 만치
  • 충청신문 dailycc@dailycc.net
  • 승인 2013.07.09 1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름에 상추가 많아지면 데쳐서 무치곤 한다. 씻는 것도 조심스러울 만치 약했던 것이 그럴 경우에는 의외로 질기다. 겉절이를 할 때 잎이 다칠까 봐 건성 뒤적일 때와는 천양지차다. 같은 재료라도 조리 방법에 따라 강도가 달라지는 걸 보는 느낌이다.

가을에 표고버섯을 말릴 때는 갈수록 딱딱해진다. 다듬을 때 자칫 부스러지던 것에 비하면 뜻밖이다. 된장찌개에 넣으려고 물에 불려도 줄기는 여전히 단단하다.

톱으로 켜야 될 만치 단단한 상황버섯도 있다. 말려서 금방 먹는 표고버섯도 그랬으니 뽕나무에서 말라붙은 상황버섯은 말할 것도 없겠지 싶다.

무를 썰어 말릴 때도 점점 끄덕끄덕해진다. 김장을 할 무렵 채를 썰어 속을 박을 정도로 수분이 많던 게 말리면 그냥 보관해도 괜찮을 만치 바뀐다.

시래기는 그와 반대로 마르면서 부스러지는 게 일이다. 아니 그 또한 억센 무청을 엮어 단 것을 보면 생각이 많다. 연한 무는 마르면서 뻣뻣해지고 억센 무청은 엮어 달면서 부스러져 삶을 때는 물을 약간 축여야 할 정도가 된다. 그렇게 삶아낸 것이 다시금 먹기 좋게 부드러워지니 강도의 변수는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될지 모르겠다.

그 외에 특이한 거라면 열을 받으면서 바뀌는 현상이다. 특별히 반숙일 때와 완숙일 때의 강도가 바뀌는 달걀이 유별나다. 프라이를 할 때도 약한 불에 익혀야 부드럽고 감자는 또 열을 가할수록 부드러워진다.

감자떡을 빚어서 찌면 말갛게 보일 정도였으나 식으면 고집불통마냥 굳어버린다. 도토리묵도 쑬 때는 풀처럼 부드럽다가도 식히면 금방 굳는다. 그것을 다시 또 끓는 물에 넣었다가 썰면 야들야들하니 먹기가 좋다. 약했던 만치 질긴 상추와는 달리 딱딱했던 만치 부드러워진다.

묵의 주성분인 녹말 자체가 열을 받으면서 그리 바뀐다. 열을 받아 부드러워지는 감자 같은 유형과 바짝 굳어버리는 달걀 비슷한 유형으로 구분될 테니 음식처럼 요리할 탓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음식도 체질이라고 할 때 감자 같은 유형은 곧 냉한 체질로 볼 수 있다. 감자가 실제 강원도 산간지방에서 나오는 걸 보면 열이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는 게 수긍이 간다. 달걀은 또 그 자체로 열이 많다. 한여름에 양계장의 닭들이 잘 죽는 것도 열이 많다는 뜻이고 그런 만큼 열이 많은 사람은 절제해서 먹을 일이다.

언젠가 교회서 플롯 독주를 할 때였다. 이상하게 도중에 자꾸 열이 났다. 손가락이 축축해지는 바람에 1절이 끝나고 2절에 들어갈 때 부랴부랴 겉옷을 벗어 던졌다. 간주곡이 끝나기 전에 벗느라고 얼마나 허둥댔는지 그냥 팽개치더라고 연주가 끝나자마자 교우들이 한바탕 웃어대지 않는가. 말을 듣고 그제야 거칠게 벗어던진 생각이 나면서 나도 모르게 실소를 했다.

그 날 따라 후텁지근하기는 했어도 더위는 타지 않는데 왜 그랬을까 하다가 낮에 인삼을 먹은 일이 떠올랐다. 행사에 갔다가 늦는 바람에 점심을 먹지 못했고 그걸 본 친구가 튀긴 인삼을 사 와서 함께 먹었다. 그리고 다음부터 자꾸 열이 났던 것이다.

나는 열을 받으면 오히려 먹을 수 없는 달걀 같은 유형이었나 보다. 그게 아니고 뜨겁게 조리를 해야 좋은 감자 같은 유형이었어도 뜻밖의 열이 지나치게 가해지면서 해프닝을 보였으니 열에도 적절한 가감이 필요한 것을 알겠다.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고 남들은 믿기지 않을 테지만 어릴 때부터 음식에 민감했던 나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음식도 체질이고 성격이라면 절제할 탓이다. 여름일수록 차갑게 식혀 주는 음식이 좋고 겨울에는 열을 보충하는 식품이 적합하다. 보리밥이 여름에 소화가 잘 되는 것도 겨울에 자란 보리가 열기를 식히고 쌀밥이 겨울에 맛있는 것도 한여름의 열기가 냉기를 가라앉히는 까닭이다. 일례로 의사들은 잘 먹는 음식을 체크하면서 기질은 물론 어떤 부위가 약한지도 헤아린다고 했다.

수학 공식처럼은 아니어도 음식에 따른 체질과 성품은 다양했고 우리 각자 그에 맞는 음식을 좋아하는 걸 보면 대부분 음식에 따른 문제였다.

상황에 따른 강약의 탄력성이 균형을 잡아 준다. 어떤 여건에서는 약하다 해도 또 다른 여건에서는 한결 강해질 수 있다. 이가 약해서 되새김질을 하는 초식동물도 가끔 뜸배질을 하지 않던가. 이가 약한 대신 뿔이 강해서 순한 송아지가 들이받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뚝심을 보이곤 했으니 순하다고 깔볼 것도 아니고 강하다고 주눅들 필요가 없다.

약하다고 약하지 않고 강하다고 전부 강하지 않다. 강했던 만치 약하고 약했던 만치 강한 게 세상의 단면이되 강약이란 결국 뒤집기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이정희 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