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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어울림과 난이도의 한계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는 건 실력이지만 어울렸을 때의 기량은 실력 이상의 범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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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02.25 17:14
  • 기자명 By. 충청신문

요즈음 플롯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약 중이다. 전공을 한 게 아닌 취미로 배운 아마추어들의 모임이었으나 일주일에 한 번씩 연습하면서 서로의 허점을 지적해 주고 실력을 쌓는 등 나름대로 수준 높은 경지를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뜻밖에 어려운 점이 많았다. 뭐랄까, 어울리면서 연주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사실 그 동안은 피아노 반주에만 맞춰 연습해 왔다. 합주라야 기타 혹은 또 한 사람의 플롯 주자와 연주해 온 터고 악보 역시 단순했다. 그러다가 30명 가까운 사람들과 연주해 보니 다양한 파트에 악보도 무척 까다롭다. 실력에 따른 문제보다 합주에 서투르다는 게 더 큰 장벽이었다.

처음 들어갈 때 나는 알토 담당이었다. 모든 파트가 낮은 음으로 나갈 때는 별 문제가 없는데 소프라노 파트에서 갑자기 높은 음이 나오면 당황해서 음을 놓치기 일쑤다. 혼자라면 비슷한 음으로 보완할 수 있지만 그 때는 정말 난감했다. 실제 공연이 아닌 연습 중이었으나 옆 사람 보기가 민망했다. 몇 번 하면서 그런 실수는 줄었는데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상태라 어려운 점이 많다.

기악 합주의 난점은 어울려서 하는 그 자체로 볼 수 있다. 혼자서 할 때보다 훨씬 복잡하다. 남과 어울리지 못하는 습성이 좋아하는 악기 연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것 같다. 피아노 반주는 필수적이라 어울림 축에 들지도 않았고 결과적으로 혼자 하는 일에 더 길들여졌었다. 성격상 혼자 연주하는 게 좋기도 했지만 두 번째 문제는 취향에 맞는 곡만 선택해 온 점이었다. 빠른 박자도 내키지 않고 화음의 폭이 넓은 것도 피하다 보니 왈츠 아니면 8분의 6박자 곡이 친근했다. 소나타에서도 화음이 들쭉날쭉한 도입부와 끝부분보다 전개부의 잔잔한 곡이 좋았고 늘 그렇게 비슷한 곡만 연주해 왔다.

그 위에 또 다양한 곡의 연주가 서툴렀다. 교회에서는 반주자에게 부탁해서 원하는 멜로디로 바꾸기도 했는데 지금은 악보대로 따라야 하는 상황이다. 좋아하는 왈츠 풍은 어쩌다 있고 싫어해 온 곡도 연습하다면서 입에 맞는 떡만 고집하는 버릇을 돌아보기도 했다. 평소 싫어도 해야 될 일이 있고 좋아도 하지 말아야 될 일이 있다고 해 왔지만 나도 모르게 기피해 왔나 보다. 자기 허점을 상대방에게 고집하면서 약점을 덮으려는 것 때문에 더 강조했는지 모르겠다.

그 습관은 바이올린을 연습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악기마다 적절한 곡은 있다. 내 보기에 플롯의 연주곡은‘비제의 미뉴에트’며 바이올린은‘비발디’의‘사계’중‘겨울’2악장이다. 그 위에 첼로 하면‘생상’의‘백조’가 떠오르지만 웬만치 경지에 이른 다음의 문제일 뿐 수준에 이르기 전부터 취향을 고집하는 건 음악의 기본자세와도 어긋났다.

이를테면 순조로운 삶만 살겠다는 자세와 다를 바 없다. 날씨만 해도 눈보라에 비바람에 폭풍이 수반되련만 맑은 날만 고집한다. 어렵고 까다로운 곡일수록 능히 연주해야 실력자로 부상하듯 진정한 삶의 주자는 폭풍과 비바람도 능히 헤쳐 나간다. 인생은 선택이되 그 선택은 싫어도 감수할 수 있는 의지로써 뒷받침된다면 나 또한 역경과 시련 앞에 더 의연해지고 싶다.

또 하나 어울려서 연주하다 보니 나보다 뛰어난 실력자들 때문에 더 분발하게 되는 것도 뜻밖의 수확이다. 솔직히 교회 같은 경우 날짜를 늦출 수도 있다. 연습을 미루거나 늑장을 부리는 성격은 아니라 해도 지금은 공연 날짜에 맞춰야 하므로 불가능하다. 나만 유리한 쪽으로 맞추기보다 전체의 흐름에 따라야 하는 상황을 뒤늦게 파악했다.

나도 과히 뒤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5년 또는 10년 가까이 합주에 익숙한 저력은 무시할 수 없고 그게 핸디캡이되 극복해야만 어울릴 수 있다는 게 관건이다. 여느 때보다 플롯 연주가 즐거운 것 또한 어려운 중에도 극복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는 건 실력이지만 어울렸을 때의 기량은 실력 이상의 범주다.

실력은 또 노력으로써 가능할 것이나 적절히 아우르는 어울림의 여부는 그 이상의 연륜이 필요하다. 악기를 다루는 기량은 피차 비슷해도 어울리면서 나타나는 개인적 소양은 각기 다르다. 실력을 갈고 닦는 건 물론 어울릴 때도 훌륭히 연주할 수 있기를 간절히 구도해 본다.

이 정 희 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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