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허위납품을 통해 업자에게 이득을 준 뒤 이 이득의 일부를 받았다 하더라도 이를 뇌물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전지법 제12형사부는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질병관리본부 직원 이모(51)씨와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시약 제조업체 영업사원 김모(36)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26일 밝혔다.
이씨는 시약 납품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2011년 10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김씨로부터 1590여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미리 짜고 허위 시약 납품계약을 통해 빼돌린 질병관리본부 예산을 나눠 쓴 것으로, 사기죄를 적용할 수는 있지만 뇌물수수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공무원이 받은 금품이 허위 물품공급을 통해 국고를 빼돌리려는 사전 모의에 따라 금원이 국가에서 물품 공급업자에게 넘어갔다가 계획대로 공무원에게 돌아온 것이라면 이는 공범자 간 내부적인 이익분배에 불과하다”며 “공무원이 이렇게 받은 금품은 직무관련성이 없으므로 뇌물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질병관리본부 공무원 천모(42)씨가 시약 제조업체로부터 법인카드를 건네받아 1180여만원을 결제해 뇌물을 수수한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시약 유통업체를 운영하면서 이 업체의 세금을 줄일 목적으로 매입자료를 꾸며내기 위해 제조업체의 법인카드를 사용한 뒤 물품 구입대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가장해 카드대금을 정산해줬을 뿐 뇌물을 주고받은 것이 아니다”라는 천씨 주장을 뒤집을 증거가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다만 천씨가 시약 제조업체와 짜고 허위납품을 통해 4억5000여만원의 대금을 국고로 지급받게 해준 혐의(사기) 등은 유죄로 인정해 천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했다.
시약 제조업체 2곳의 대표와 영업사원에게도 징역 10월∼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이 각각 선고됐다.
김태일기자 ktikti@dailycc.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