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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꽃으로 그려 보는 계절의 자화상

“한 송이 꽃이라도 따사한 볕과 비바람에 피고 지듯 내 삶 역시 그렇게 아름다운 영역을 구축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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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03.25 17:20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제는 정말 봄인가 보다. 황사에 꽃샘이 줄곧 시달리다가 며칠 째 따사로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목련 그루의 꽃망울이 도드라졌다. 민들레는 파랗게 싹을 틔우며 꽃 피울 준비에 한창이고 돌 틈에 어우러진 냉이 꽃도 연연히 곱다.

이름 모를 꽃이라 해도 오래 전부터 봉오리를 새기고 꽃잎을 매만져 왔을 것이다. 그렇게 피면서도 자랑하지 않고 잠자코 있다가 바람이 불 때마다 향기를 발하는 것도 신비스럽다. 바로 그 잎이 서로 부딪치면서 짙은 향기가 배어나오고 아름다움의 진수를 보여주곤 했다.

나긋한 꽃잎을 보고 있으면 꽃은 아름다움이기 전에 눈부신 고통이었다는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다. 우리 그로써 꽃 하나에 깃든 바람과 볕과 비바람을 헤아리곤 하지 않던가. 향기가 결국 제 몸을 찢고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으로 그윽해진다면 삶의 품격 또한 그런 속에서 형성되는 걸 깨우쳤다고나 할지.

하지만 그런 표현조차 없는 게 또한 그 속내다. 꽃 하면 흔히들 부드러운 잎과 화려한 빛깔에 매료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 깃든 의지다. 우정 나비를 부르거나 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향기에 매료되어 우리 끝내는 발길을 돌리기까지 하는 데서 진정한 꽃의 아름다움을 보곤 한다.

꽃의 아름다운 건 무엇보다 뿌리박은 데서 말없이 피고 지는 그것이 아닐까. 어느 때 보면 깨진 기왓장 틈에서도 핀다. 꽃이라고 할 것도 없이 미미하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윤택한 정원의 그것보다 훨씬 예쁘게 다가온다. 물받이나 시궁창 등에서 거꾸로 뿌리박아 피기도 하는데 빛깔도 희미하고 일그러진 모양새지만 어기찬 모습은 눈물겨울 정도고 우리 또한 악조건에서 깔축없이 사는 모습보다 감동적인 건 달리 또 없음을 보곤 하지 않던가.

그 위에 가장 큰 특징은 타고난 개성대로 피고 질 뿐 예쁘고 화려한 꽃을 시새우지 않는 점이다. 작고 조촐한 풀꽃이 화려한 백합이나 장미를 부러워하는 일도 없거니와 그들 화려한 꽃이 이름 모를 풀꽃을 얕잡아보는 일은 더더욱 드물다. 작으면 작은 대로 또는 수수하게 생긴 그대로 절기에 맞춰 피면서 본분을 다할 뿐이라는 겸허한 자세가 눈길을 끈다. 그것을 보며 우리 때로 공연한 허세를 부리다가 낭패를 보는 일도 적지 않았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봄꽃의 아름다움은 무엇보다 겨울을 이기고 피는 그 점이라 하겠다. 여타 계절의 꽃들도 마찬가지였으나 특별히 추운 겨울을 물리친 봄의 전령이라는 게 더욱 깊은 뜻을 갖는다. 겨우내 차가운 땅속에서 꽃 필 날을 그리며 기다려 온 소망만으로 더욱 대견하고 어기차게 생각되는 건 아닌지. 날씨는 화창하고 볕도 따스하지만 얼음 녹은 물을 길어 올린 뒤 피는 것 때문에 그 의지를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이리라.

꽃 하나에 농축된 의미는 그렇듯 작은 게 아니다. 아름다운 것 치고는 생명이 짧은 것도 이렇다하게 말이 없는 속내를 드러낸다. 시들지 않고 영원하다면 누가 연연할 것인가. 길어 봐야 열흘이고 더러는 피지도 못하고 지는 까닭에 아쉬워하며 의미를 찾고자 하듯 인생 역시 풀잎의 이슬처럼 잠깐이라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게 된다. 찬란한 봄이 겨울 다음이라는 데서 행복 또한 역경과 시련 다음이라는 것을 거듭 되새기는 것이다.

바람이 분다. 뜰에서 번지는 봄내음이 자못 싱그럽다. 나도 꽃처럼 살고 싶었던 걸까. 부르지 않아도 벌 나비 찾아오는 운치 속에서 봄 마중물이 1년의 초록을 퍼 올리고 그렇게 비롯된 시심詩心이야말로 우리 삶을 촉촉 적셔 주리라 믿는다. 다만 한 송이 꽃이라도 따사한 볕과 비바람에 피고 지듯 내 삶 역시 그렇게 아름다운 영역을 구축하고 싶다. 꽃과 향기로 가꾸어질 삶의 반경 돌아가면서……

이 정 희 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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