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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해마다 4월이 오면

“아름다운 4월의 역사가 점점 잊혀져가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숙연한 마음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냉철하게 직시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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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04.07 18:25
  • 기자명 By. 충청신문

세상 물정 모르던 어린 시절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얼핏 이해가 되지 않았다. T.S.엘리엇의 ‘황무지’란 시 자체가 워낙 장편인데다가 내용이 난해했다. 특히 시가 갖는 역설적 표현이 낯설고 서먹서먹했던 것이다. 도대체 왜 4월이 잔인하단 말인가. 만물이 소생하고 생명의 기운들이 새롭게 약동하는 계절이 마냥 아름답고 신비롭기만 한데.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역사를 배우고 현실을 알게 되면서 시의 표현은 참으로 기막힌 진리라는 걸 깨닫게 된다. 80년대 오월의 봄은 찬란하지만 정녕 슬프지 않을 수 없었고, 60년대 깜깜한 밤중 그 어둠 속에서도 ‘눈’은 살아있었고, 새벽이 지나도록 밤새 기침을 하면서 젊은 시인은 ‘눈’을 살아있다고 노래했다는 게 정말 경이로울 뿐이다.

1894년 갑오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육갑이 두 번 바뀌고 금년도 벌써 4월이 되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4·19혁명기념일을 맞는다. 4년 전인 1956년 대선 때 해공 신익희 선생께서 돌아가시더니 1960년 대선 역시 선거를 목전에 두고 유석 조병옥 박사께서 미국 워싱턴 D. C. 월터리드 육군병원에서 급서하셨다. 판세는 이미 기울었고,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는 물 건너갔다. 이승만의 장기집권은 움직일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당 독재정권은 3·15부정선거를 총체적으로 자행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국민들은 침묵하였다. 비굴하게 바람보다 먼저 누워버렸다. 그러나 어린 학생들은 바람보다 먼저 일어났고, 바람보다 먼저 외쳤다. 그들은 분노할 줄 알았고, 용감하게 저항했다. 그러면서 의롭게 죽어갔다. 이런저런 눈치 보고 이거저거 재면서 머리 굴리고 눈알 굴리는 기성세대 어른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들이 분노한 것은 단 하나. 민주국가에서 있어서는 아니 되는, 선거 같지도 않은 선거, 부정선거에 대한 분노였다. 그러니 외침도 단순했다. ‘부정선거 다시 하라!’ 이 말이 씨가 되어 독재정권을 바꾼 것이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현재의 대한민국. 지난 대선에서 국가정보원이 불법·부정하게 개입되었다는 혐의로 재판에 계류 중이다. 뿐만 아니다. 군부의 어느 기관이 행정부의 어느 부처가 불법적으로 대선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물론 지금 대다수 국민들의 뇌리에서는 벌써 잊혀진 귀찮고 짜증나고 불필요한 기억일 터이지만.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간 어린 생명들이 만들어낸 4월의 역사,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민주혁명을 오늘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왜 하필이면 이 땅에서 자유·민주·정의가 어린 학생들의 피를 먹고 자라났단 말인가. 그래서 4월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 잔인한 달이 되었단 말인가.

‘1960년 4월 19일, 이 나라 젊은이들의 혈관 속에 정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능히 던질 수 있는 피의 전통이 용솟음 치고 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 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되살아 피어나리라.’(4월 학생 혁명 기념탑 비문)

나는 단언한다. 4·19가 없다면 5·18도 없었을 것이고, 5월이 없다면 87년의 6월도, 2000년의 6·15도 없었을 것이라고. 그러나 우리는 먹고살기에 바빠서일까 아니면 너무나도 뻔뻔스런 권력의 야비함에 지쳐서일까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4월의 역사가 점점 잊혀져가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가 정녕 ‘생각하는 백성’이라면 4월도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남아 4월의 젊은 넋을 추념해 보자. 그리고 가슴에 손을 얹고 오늘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냉철하게 직시해 보자. 나라의 흥망은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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