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라 꽃피는 게 아니라 꽃피니 봄이다. 법정 스님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봄인 줄 알겠다. 울긋불긋 꽃 대궐이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화창한 봄날엔 역시 꽃놀이가 제격이다. 아닌 게 아니라 주말 충청 땅은 봄꽃 축제장이다. 천안에선 북면위례벚꽃축제가 열리고, 공주에선 국고개역사축제가 벚꽃과 함께 한다. 보령에선 주산벚꽃맞이 주민화합축제, 금산에선 산꽃나라 걷기여행이 펼쳐진다. 충주가 충주호 봄나들이 한마당을 펼치니, 제천은 청풍호 벚꽃축제로 들썩인다.
▷꽃바람 꽃향기 속에서 마음까지 꽃물이 드는 꽃놀이, 싫어하는 사람 누가 있으랴. 옛사람들은 ‘답청(踏靑)’이라 하여 봄의 ‘푸름을 밟았다’. 물 흐르는 계곡에 잔을 띄워놓고 시를 지으며 한 잔 마시는 놀이가 따랐고, 둥글게 빚은 찹쌀가루에 꽃을 얹어 화전(花煎)을 부쳐 먹기도 했다. 잡가(雜歌)인 ‘유산가(遊山歌)’는 노래로 꼬드긴다. “봄이 오니 성안에 꽃이 만발하고, 따뜻한 봄날 만물은 바야흐로 기를 펴고 자라난다. 때가 좋구나. 친구들아 산천경치 구경가세.”
▷보슬비가 내리나, 안개가 끼거나, 바람이 불어도 가리지 않았다. 조선 후기 문신 권상신(權常愼)은 ‘남고춘약(南皐春約)’에서 “빗속에 노니니 꽃을 씻어주는 세화역(洗花役)이요, 안개 속에 노니니 꽃에 윤기를 더해주는 윤화역(潤花役)이다. 바람 속에 노니는 건 꽃이 떨어지지 않도록 막아주니 호화역(護花役)”이라고 호기를 부린다. 날씨 핑계대고 오지 않는 친구들에겐 벌주를 먹였으니 이것이 ‘봄의 약속(春約)’이었다. 꽃을 꺾는다는 건 있어선 안 될 절대 금기였다.
▷오늘날 꽃놀이에도 룰이 있다. 이기철 시인은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에서 꽃을 가슴에 담으려면 세상일 잠시 잊으라 이른다.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직업도 이름도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으란다.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통장도” 잊고 벚꽃 그늘처럼 청정하게 앉아보란다.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 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걸 알게 된단다. 삶도 벚꽃처럼 넉넉해지고 싱싱해진단다.
안순택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