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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진도 세월호 참사와 슬픈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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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05.15 20:31
  • 기자명 By. 박희석 기자
▲ 박 희 석 편집국 부국장

진도 세월호참사를 배경으로한 ‘슬픈 아리랑’이라는 진혼곡이 만들어지고 있다. 아리랑은 한국인에게 무언의 애틋한 감정을 전달하는 국민적 가요이기도하다. 자칫 본질적이거나 철학적일 수도 있는, 현상적이거나 시대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농후직(神農后稷)이 시경가(始耕稼)니/자유생민(自由生民) 위대본(爲大本)이라.

종고(鍾鼓) 울여[려]라 종고(鍾鼓) 울여[려]라./박언초아(薄言招我) 제동반(諸同伴)

아로롱(啞魯聾) 아로롱(啞魯聾) 어희야(於戱也)/사육생애(事育生涯) 노불탄(勞不憚)일셰.1)

위기와 고난의 장면에서 힘을 발휘한 아리랑 노래는 비관적인 삶을 해학적으로 전개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어느 경우에도 좌절하지 않는 것이다. 이때 해학이라는 장치는 그것을 통해 슬픔을 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슬픔을 차단해 주제를 비판적으로 드러내는 구실을 한다. 쫓기는 이들의 쓰라리고 처절함을 표현할 때조차 절망 자체가 아니라 절망을 이기려는 굳센 각오를 동시에 표현한다.

아리랑의 생명력은 여기에 있다. 아리랑은 고정된 하나의 텍스트가 아니라 민족·민중의식의 성장과 함께 시대사에 유연하게 대처해 온 역동적 산물이다. 그 아리랑이 진도에서 울려퍼지고 있다. 세월호 침몰로 인해 300명 가까운 인명이 사망또는 실종되는 엄청난 재난에 온국민은 충격과 아픔속에 회한의 나날을 보내고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수학여행을 떠났던 고등학생들이라는 사실이다.

아직도 선체에 갇혀 생사를 모르는 많은 학생들,어둠과 추위와 부족한 산소속에서 엄청난 두려움과 공황속에서 이미 생명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어린 학생들을 생각하는 부모들의 심정은 가히 절망적이라 할 수 있다. 애통함에 분노를 더하는 깊은 패닉상태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폴란드 작곡가 헨리크 고레츠키(1933~ 2010)의 제 3번 ‘슬픈 노래들의 교향곡’ 제 2악장은 폴란드 자코파네 게슈타포 본부의 지하실 벽에 씌어진 낙서에 곡을 붙인 것이다.

헬레나 반다 블라추지아코브나라는 열여덟살 소녀는 감옥 밖에서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글을 남겼다.

“울지 마세요. 엄마, 울지 마세요. 가장 순결하고 선한 천상의 여왕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거예요.”

1976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전쟁과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당한 폴란드인들을 위한 일종의 진혼곡이다. 성악으로 들려주는 가사의 내용은 15세기 폴란드 승려의 애통해 하는 노래, 소녀가 감방의 벽에 칼질로 새겨놓은 기도문, 폴란드의 슬픈 민요다.

고레츠키를 국제적인 명사가 되게 한 이 작품의 원천은 슬픔이다. 세 개의 악장은 느린 렌토와 라르고의 빠르기로 되어 있으며 장례 음악처럼 조용하게 연주된다. 강대국 사이에서 장기간 약소국으로서의 고통과 수난을 겪으며 살아야 했던 폴란드에는 고레츠키와 같은 탁월한 작곡가, 우수한 작품이 참 많다.

그렇다. 예술의 원천은 슬픔이다.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다가 겨우 31세로 세상을 떠난 프란츠 슈베르트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의 작품은 음악에 대한 나의 이해와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 무엇으로 이 집단 울분과 슬픔, 고통을 달래고 치유할 수 있을까. 결코 잊을 수 없고 치유될 수 없을 것처럼 상처와 슬픔이 크다. 옛적 아이를 잃은 정지용(1902~ 1950)은 그 슬픔을 ‘유리창’이라는 시에 담아 남겼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많은 슬픔 중에서도 가장 참담하고 견디기 어려운 것은 자식을 잃은 슬픔일 것이다.

독일의 여성 판화가 케테 골비츠(1867~ 1945)의 ‘자식의 죽음’(1925년 작)이라는 작품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다. 자식의 관을 들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슬픔과 절망의 극치처럼 보인다.

이 작품이 특히 충격적인 것은 어머니가 두 손으로 들고 있는 그 관이 마치 침몰된 여객선 세월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잃은 정지용(1902~1950)도 그 슬픔을 ‘유리창’이라는 시에 담아 남겼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어쩌다가 우리는 이렇게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일을 겪게 된 것일까. 한 달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 시신도 찾지 못한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한국인들은 지금 슬픔과 죄의식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무엇으로 이 집단 울분과 슬픔, 고통을 달래고 치유할 수 있을까. 결코 잊을 수 없고 치유될 수 없을 것처럼 상처와 슬픔이 크다. 슬픔을 이기는 힘을 우리는 대체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결론은 우리국민 모두가 마냥 주저앉을수 만은 없다는 사실이다. 슬픔으로 만들어진 것이 슬픔을 이기게 해준다. 그 배경에 진도의 진혼곡이 자리잡고 있다. 아리랑을 부르며 2014년 봄의 이 비극을 되새긴다. 그리고 모두가 조금이라도 힘을 다시 얻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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