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이 한 마음으로 ‘담배를 끊자’는 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이른바 ‘금연동맹(禁煙同盟)’이다. 일본이 침략야심을 드러내고 야금야금 먹어 들어오던 1900년대의 일이다. 이 무렵 일본은 썬 담배를 얇은 종이에 만 ‘궐련(卷煙)’을 만들어 우리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히로’ ‘선 라이즈’ ‘핀헤드’ 등 일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늘어나자 담배의 잠식을 일본 세력의 잠식과 동일시하여 금연 저항이 이심전심으로 번져갔던 것이다. ‘담바고타령’이 불린 것도 이때다.
▷“담바고야 담바고야, 동래(東萊) 울산(蔚山) 물에 올라 이 나라에 건너온 담바고야, 너는 어이 사시사철 따슨 땅을 버리고 이 나라에 왔느냐, 돈을 뿌리러 왔느냐 돈을 훑으려 왔느냐, 어이구 어이구 이 담바고야.” 금연 저항이 금연동맹으로 공식화된 것은 국채(國債)보상운동 전개와 궤를 같이 한다. 1890년 말 대한제국 조정은 일본으로부터 빚을 얻어 쓰고 있었다. 빚더미에 올려놓고 꼼짝 못하게 하는 일본의 정책에 말려든 것이다. 그게 1907년 1300만 환에 이르렀다.
▷부녀자들이 금반지를 빼어 내놓는 ‘탈지환동맹(脫指環同盟)’, 반찬을 줄이는 ‘감선회(減膳會)’ 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져 나갔으며, 남자들은 금연을 하고 담뱃값을 모아 내는 금연동맹운동을 펼쳤던 것이다. ‘애국심이여 애국심이여, 대구 서공 상돈(徐公 相敦)일세, 1300만 환 국채 갚자고 보상동맹 단연회(斷煙會) 설립했다네.…아홉 살 어린이 이용봉도, 세뱃돈 얻어 보조하니…포동 사는 안형식이 지금 여섯 살 어린애로서 아버지의 의금 내는 것 보고 구화 2원 바쳤네….’
▷‘서공 상돈’은 서상돈으로 국채보상운동의 불씨를 붙인 사람이다. 금연동맹이 번지자 고종 황제도 감격하여 “짐도 연초를 불어(不御)한다”고 금연칙령을 내렸고, 고관대작들도 잇따라 금연을 해 거족적 운동으로 번져갔던 것이다. 내일이 세계 금연의 날이다. 금연의 날을 만들어 부추겨도, ‘작심삼일’의 대표격이요, 법으로 강제해도 안 되는 게 금연이다. 그 힘들다는 금연을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단박에 실천에 옮긴 우리 조상들의 민족정신에 고개가 숙여진다.
안순택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