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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들머리]비상나팔을 불며 의병을 일으킨 ‘민긍호’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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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08.05 15:26
  • 기자명 By. 충청신문

“나라에 병사가 없으면 무엇으로써 나라라 할 수 있겠는가? 군대를 거두라는 명령에 순종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강원도 원주 진위대 고성 분견대의 정교(正校, 장교의 하나)였던 민긍호(모름 ~ 1908.2.29)는 부하에게 비상나팔을 불게 합니다. 그리하여 약 삼백여 명의 병사를 이끌고 원주 우편 취급소를 습격하는 등 왜경을 공격합니다. 이는 1907년 8월 5일의 일입니다. 민긍호는 여흥 민씨 출신으로 경성에서 태어났으며 마침 원주 진위대장 홍유형이 상경하여 부재중일 때, 충주 수비대인 일본인 이궁(二宮) 소위 등 19명이 원주 수비대를 해산하기 위하여 온다는 정보를 듣지요. 이때 민긍호는 분견대를 소단위의 의병부대로 편성합니다.

이들 소의병부대는 제천, 죽산, 장호원, 여주, 홍천 등지 일대에서 유격전으로 적에게 큰 타격을 주면서 활약합니다. 이와 같이 민긍호의 의병부대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강원도, 충청도 일대에서 크게 활약한 의병부대로는 허 준, 이경삼, 김만군, 이강년, 변학기, 조인환 등이었습니다. 8월 5일 민긍호의 봉기 사실을 보고 받은 일본 사령부는 경성 주재 보병 제47연대 소속의 2개 중대와 기관총 4정, 공병 1개소대로 편성된 군대를 파견하였지만 의병을 진압하는 데는 실패합니다. 그리고는 중앙에 다음과 같은 보고문을 올립니다.

“지형을 잘 아는 토민의 비호를 받고 있는 폭도는 대단히 민활하여 교묘하게 우리 행동을 정탐하여 은현출몰(隱現出沒)하므로, 지대는 원주 도착 후 그 부근의 소탕에 노력하였으나, 수일간 조금도 얻은 것이 없습니다.” 이후 계속되는 일본군과의 싸움에서 민긍호 의병부대는 10월 26일 횡성 둔촌에서, 11월 27일에는 홍천 서남 양덕원에서, 12월 8일에는 원주 동북 작곡에서 계속 격전을 벌여 용맹을 떨칩니다만 애석하게도 1908년 2월 28일 원주 치악산 아래인 강림 동쪽 등자치 부근에서 적에게 노출되어 사살되는 비운을 맞이합니다. 민긍호가 거느린 의병 부대는 당시 강원도 일대에서는 가장 세력이 큰 의병 부대였으며 왜경도 벌벌 떨만큼 신출귀몰한 부대였지요. 오늘은 바로 민긍호 의병장이 일본군에 저항하여 의병을 일으킨 날입니다.

<김영조 푸른솔 겨레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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