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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처(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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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12.10 17:45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 정 호 백제문화원장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왕의 아내를 후(后), 제후의 아내를 부인(夫人), 대부의 아내를 유인(孺人), 선비의 아내를 부인(婦人), 서민의 아내를 처(妻)라 했다고 한다”

개과처선(改過妻善), 인명재처(人命在妻), 사필귀처(事必歸妻}). 친구가 카톡에 아내 시리즈를 띄웠다. 글자 하나 바꿔놓은 우스갯소리인데, 예사롭지 않다.

처? 가끔 가족관계를 표기할 때 난감해 한 적이 있다. 아내, 처, 배우자를 뒤죽박죽 쓴 기억이 있다. 와이프(wife)라고 적는 젊은 세대도 있다고 한다.

처는 혼인하여 남자의 짝이 된 여자다. 아내를 일컫는다. 결혼을 해야 처의 지위를 갖는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왕의 아내를 후(后), 제후의 아내를 부인(夫人), 대부의 아내를 유인(孺人), 선비의 아내를 부인(婦人), 서민의 아내를 처(妻)라 했다고 한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처의 지위를 획득하지 못한 여인들은 서러웠다.

모계중심사회가 부계중심사회로 이동하면서 일처다부제, 일부다처제의 유풍이 남아 있는 부족도 있다. 우리나라는 일부일처만 허용한다. 복혼이나 중혼을 인정하지 아니한다.

상처를 하거나, 이혼이 늘면서, 여러 명의 처를 겪기도 한다. 본처, 전처, 후처, 나이가 어린 처도 있고, 연상의 처도 있고, 다국적 처도 있다.

고구려 때에 처가살이(母居制) 관습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출산을 친정에서 했다. 단재 신채호 생가도 안동 권씨 외갓집이다. 오늘날은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을 거쳐 처갓집에서 양육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고모보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삼촌 이모가 훨씬 친숙하다. 언어 현실이 바뀌고 있다. 처의 부모인 장인, 장모를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른다. 아내가 고우면, 처갓집 말뚝에 절한다고 한다.

이분법적으로 본다면 사람은 남성과 여성 두 종류다. 남자 아니면 여자다.

내년부터 우리나라에는 여성이 많다. 통계청 추계 2531만 명 대 2530명으로 1만 명이 많다. 통계를 집계한 1960년 이후 첫 여초(女超) 시대가 온 것이다. 여성의 수가 남성의 수를 넘어선 것이다. 아직은 남아 출생비율이 높지만, 전통적인 남아선호 경향이 약화되고, 여성의 수명이 길기 때문이다. “남자는 이레 굶으면 죽고, 여자는 열흘 굶으면 죽는다”는 속담이 사실로 입증되었다. 할아버지보다 할머니가 많아진 고령화 시대인 것이다. 여자보다 남자가 일찍 죽어야 자식들이 건사하기 낫다는, 그래서, 결혼도 10년쯤 여성이 나이가 많은 쪽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로당 어른들이다. 여성의 수가 많아지면, 노동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문제란다. 여성의 고용을 늘리고, 가정과 양립할 수 있는 근로조건을 튼실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제 여성들은 현모양처이기를 거부하고 직장을 갖고 자아실현을 꿈꾼다.

2009년 발행된 최고 고액권인 오만원권에 신사임당이 앉아 계신다. 아들 율곡은 오천원권에 이미 넣어 놓으셨다. 신사임당은 단순 현모양처에 자신의 존재를 한정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가진 상징적인 주인공이다.

대통령도 여자다! (처의 지위를 경험하지 아니한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우리는 급속하게 여성중심사회로 가고 있다.

이 땅의 처들이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다. 전세 사는 처들은 전셋값 오르는 걱정이 태산이다. 우아하고 교양 있고 싶고, 당당하고 멋지고 싶은데, 녹록지 않다. 한때는 내로라하는 본처였으나, 사별한 지 오래인 아흔 두 살 할머니는 담뱃값 오른다고 눈을 흘긴다. 추운 처들이 많다.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취약해진 처들이 많다.

조강지처(糟糠之妻), 힘든 삶, 같이 살았으면 모두 조강지처다. 족보에 처의 이름을 올리는 가문이 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를 악처로 꼽는다. 남편을 이해해 주지 않고 험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처도 빈방보다 낫다. ‘효자 효부가 악처만 못하다(不如惡妻).’ 열 자식이 한 처만 못하다는 속담은 지금도 유효하다.

순처자는 흥하고, 역처자는 망한다(順妻者興 逆妻者亡). 카톡에 뜬 여러 예문 중 나는 처화만사성(妻和萬事成)을 꼽았더니, 아내는 낭중지처(囊中之妻)가 맘에 든단다. 현진건의 단편소설 ‘빈처(貧妻)’처럼, 가난한 지식인 부부의 아련함이 떠오른다.

연말이다. 가급적 부부동반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처를 항상 생각하시라. 당신의 처는 주머니 속 곱게 계신가? 애처가도 괜찮고 공처가도 괜찮다.

나이를 먹으면서, 행복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김 정 호 백제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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