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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춘래불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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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2.25 18:04
  • 기자명 By. 충청신문

입춘, 우수가 지나고 경칩이 머잖았다. 절기상으로 봄이다. 초등학생들이 봄방학에 신이 났다. 꽃소식이 들려온다.

그런데, 세상 소식은 어둡다. 대통령이 ‘불어터진 국수’라는 속된 비유법을 쓸 정도다. 건설업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벌인 4대강 사업이 버겁다. 복지를 위해 소비세를 많이 걷어야 한다.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담뱃값을 올렸다. 연금 축소에 선생님들의 명퇴가 줄을 선다. 악순환이다. 장관이든 대법관이든 인사청문회를 보면, 부끄럽다. 해고 노동자 투쟁이 짠하다. 애써 외면하려 해도 남의 일 같지 않은 일들이 이어진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춘래불사춘은 1980년 ‘서울의 봄’ 때 김종필 총리가 인용하면서 우리 귀에 익숙해졌다. 유신체제가 무너지고, 민주화 흐름이 거셌는데, 이를 짓밟고 군부가 집권한 정치상황을 빗대 한 말이다.

춘래불사춘은 한나라 때 화친 정책으로 흉노에 시집간 궁녀 왕소군의 슬픈 사연을 노래한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 ‘소군원(昭君怨)’에 나오는 구절에서 유래한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오랑캐 땅엔 꽃도 풀도 없어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오랑캐 땅엔들 화초가 없으랴만, 왕소군의 심정이 그러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역대 4대 미인은 춘추전국시대 월나라의 서시, 삼국시대의 초선, 당나라의 양귀비, 한나라의 왕소군을 꼽는다. 중국 사람들은 과장법이 심해 미인 표현에도 웃음이 나온다. 침어(沈魚), 서시가 세수를 하자 그 얼굴을 본 물고기가 지느러미 동작을 멈추고 물에 가라 앉았다느니, 폐월(閉月), 초선이 고개 들어 달을 보자 달도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었다느니, 수화(羞花), 양귀비가 꽃을 건드리자 꽃이 잎으로 가리며 부끄러워했다느니, 낙안(落雁), 왕소군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에 반한 기러기가 날갯짓을 멈추고 땅에 떨어졌다느니!

춘래불사춘은 중국인들이 자부하는 절세미인인 왕소군과 얽혀 있다.

국민소득은 올라가는데 빈곤층은 늘어난다. 아랫목은 절절 끓는데 윗목은 냉골이란다. 팍팍한 삶 앞에서 봄을 느낄 여유가 없다. 구직 포기자가 50만 명에 육박한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봄이 올동말동 하여라.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에게 봄은 쉽게 오지 않는다. 쪼들리거나, 우환이 있으면 봄이 왔어도 도무지 봄같지 않다. 계절은 좋은 시절이 왔지만 아직도 마음은 겨울이다.

좋은 세상 같은데 좋은 것 같지가 않다. 즐거움이 많은 것 같은데 즐거운 것 같지 않다. 밖이 화창할수록 우울증 환자 발병률이 높다. 자살률도 높다고 한다.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일제 식민지 강점기 해방된 조국을 그리던 시인 이상화는 절규한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마저 빼앗기겠네.”

열반경에 참괴(慙愧)가 나온다.

‘참’이란 스스로 죄를 짓지 않는 것이요, ‘괴’란 남으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이다. ‘참’이란 사람에게 부끄러워함이요, ‘괴’란 하늘에 대해 부끄러워함이다. 두 말을 합쳐서 참괴라 하나니 참괴가 없는 자는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봄은 창피스러움과 부끄러움을 일깨워준다.

“세월호 유가족이 삼보일배 행진을 하네요.”

봄은 위험한 계절이다. 얼었던 땅이 녹아 지반이 약해진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기 때문에 봄이 온다고 한다.

해마다 그랬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기를 바랐는데.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무심하게도 춘래불사춘인가!

모두가 신명나게 봄의 향연을 즐겨야 한다. 봄다운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희망을 갖자. 봄은 기어이, 마침내, 언젠가, 부득이 오고야 만다.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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