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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미 대사 피습과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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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3.16 16:30
  • 기자명 By. 충청신문

미국 대사의 피습사건의 뉴스를 접한 미국배우 클린트 이스트우의 심정이 어떨지 궁금하다. 전형적 미국인 특유의 보수적인 애국정신이 깃든 이 노배우의 분노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엊그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보인 모습은 어느덧 완연한 노인의 모습이다. 젊은 시절부터 그의 영화 팬으로서 만감이 교차되지만 그만한 당대의 배우가 없다는 것을 회고해본다.

폴 뉴먼, 마론 브론도와는 달리 당대 할리우드 대스타 중 가장 보수적인 역을 연기해 온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외양도 실제 성향도 세월이 지날수록 보수적 이념이 더욱 깊숙이 배어 가는 것을 느낀다. 젊은 시절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에서 사이코패스 여성에게 쫓기는 음악 DJ 역할을 제외하면, 이스트우드는 ‘더티 하리’에서는 때 묻은 경찰로, 웨스턴 무비에서는 총구의 불을 뿜으며 주름진 입가에 시가를 씹는 공포의 서부 방랑자로, 줄곧 악을 소탕한다는 핑계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거친 남자로 등장한다.

그가 첫 감독 제작한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는 젊은 시절 어린아이와 부녀자까지 살상하며 현상 수배된 철도 갱단 출신의 초라한 목장지기가 되어, 죄 값을 회개하려 몸부림치는 늙은 총잡이로 다시 장총을 잡는다. 시종일관 숨막히는 서스펜스(suspense) 끝에 이 영화에서 나온 단 한 번의 액션은 선술집에서 토호세력인 보안관을 거꾸러뜨리는 한 발의 총성이다. 장대비가 내리는 거리를 떠나며 더 이상 부녀자를 괴롭히는 자들은 지옥으로 보내버리겠다며 예의 거칠고 쉰 목소리로 경고하는 모습은 마치 구약의 메시아가 죄와 벌에 대해 응징하는 것 같은 메시지로 들린다. 이 영화는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으며 마치 쓰레기통 속의 장미처럼 인간의 심연에 남아 있는 일말의 양심을 조명하여 일깨워주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밀리언 달러 베이비’나 ‘그랜 토리노’처럼 10년 안 쪽으로 그가 제작·감독한 작품들에서는 종교에 의문을 제기하는 어린아이 같은, 어쩌면 종교에 맞서려는 무신론자의 독백 같은 대사가 종종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에게도 죽음을 앞둔 노년의 내적 갈등이 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이스트우드는 LA 뒷골목 허름한 권투도장 관장으로 등장하여, 컨테이너 베이비를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시켜 밀리언 달러 챔피언에 오르도록 만든다. 그러나 그녀가 인생에서 영광을 챙긴 순간, 좁은 링 안에서 도전자는 챔피언의 뒷목을 가격한다. 이 최악의 경기 끝에 그가 키운 챔피언은 식물인간이 되어 병원에 누워 있다. 평소 주일날 성당에서 신부를 만날 때마다 삼위일체에 대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며 귀찮은 질문을 던지곤 했던 권투도장 관장. 그런 그가 뇌사 상태에 빠진 제자를 보며 종교와 생명에 대한 갈등과 회의 끝에 그녀의 코에 연결된 튜브를 제거하고 어두운 병원 밖으로 나오는 것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영화 ‘토리노’에서 이스트우드는 지독한 고집불통의 늙은 퇴역군인으로 등장한다. 마지못해 나가는 성당에서 부인의 유언인 고해성사를 못하는 것은 새로 부임한 신부가 세상물정을 모르는 젊은 신부이기 때문이라고 면전에서 말한다. 그리고 만들어진 신을 빙자한 사기라고까지 중얼거린다. 옆집 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을 그는 처음에는 무시하고 상대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네들의 가족애에 공감을 느끼며 우정을 쌓는다. 이민자 가족들을 괴롭히는 아시아 갱단에 맞서는 최후의 대결은 상대편 갱에게 살인죄를 뒤집어쓰게 하여 감옥에 집어넣으려는 계산된 전략이었다. 악을 용서한 것이 아니라, 악을 법으로 엮이게 만들어 악인을 파멸시키려는 교묘한 함정을 쓴 것이다.

무엇보다 자진해서 죽음으로 끝낸 그 대결을 하기 몇 시간 전, 그는 솔선해 고해성사를 한다. 이 퇴역군인의 평소 모양새를 보면 천국의 존재를 믿는 자가 전혀 아니었다. 그러나 옆집에 사는 가난한 아시아인들의 따뜻함을 통해 그는 비로소 전쟁 중에 얻은 죄책감에서 벗어나 주변 사람들에게 인간다운 정을 줄 수 있었고, 옆집 사람들을 위해 자신까지 희생한다. 인간이 가진 본연의 희생정신을 비판했던 그가 오히려 교회의 가르침대로 자신을 희생한 것이다.

이렇게 그가 노년에 만든 영화들은 모두가 강한 노인과 전통과 애국심이 깃든 국민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비단 연예인이라는 신분보다는 영화제작을 통해서 더 한층 보여주는 한 자연인으로서의 인생경륜과 철학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이번 미국대사의 피습을 보고 이라크 전을 담은 최근 화제작 ‘스나이퍼’를 제작한 그가 또 어떤 보수애국적인 색채가 묻은 영화를 만들지도 모르겠다. 미국대사를 피습한 사건이 ‘비온 뒤 땅이 굳는다’는 속담대로 될지 모르지만, 비겁하고 악랄한 사건으로 오랫동안 한국인뿐만 아니라 미국인들의 뇌리에 남을 것이다.

 

강명수 예촌 문화벤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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