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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봄, 작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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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3.24 18:23
  • 기자명 By. 충청신문

작은 것을 좋아한다. 꽃만 해도 소담한 것보다는 작은 게 예쁘다. 이른 봄 피는 제비꽃을 볼 때도 그랬다. 키도 작고 몸짓도 작은 게 그나마 눈에 띄는 건 특유의 보랏빛과 많지도 않은 서너 송이가 오밀조밀 핀 까닭이다. 자갈밭을 기는 앉은뱅이 민들레와 밭둑을 뒤덮은 꽃다지와 냉이 또한 귀엽고 앙증맞기도 했지만 작은 것에 유독 끌리는 탓이다.

엊그제 냉이를 캤다. 바구니 하나 들고 심심파적으로 나왔건만 생각보다 힘들다. 땅속 깊이 뿌리박은 탓인지 흙을 판 뒤 우정 잡아당겨야 했다. 잎이 넓적한 냉이는 쉽게 딸려 나오는데 작고 빈약한 것들이 고집들을 피운다. 한 두 번 아니고 계속 반복되는 통에 힘들었지만 손에 쥐기도 어려운 것일수록 손가락같이 굵은 뿌리가 무척 대견했다.

한참을 씨름하다 보니 더수구니가 아프다. 잠깐 쉬기로 하고 밭둑에 올라섰다. 피었다. 두드러기가 번지듯 올망졸망 핀 자운영 꽃이 노곤한 봄볕 아래 예쁘다. 연한 꽃잎은 나비가 앉기만 해도 다칠 듯 투명한데 꽃다지는 바닥을 기며 피었다. 보랏빛과 샛노란 융단이 겹쳐진 듯 온통 화사한 느낌이다. 냉이를 캘 때는 작은 것들의 다부진 성깔을 보았는데 지금은 바닥에 다보록 깔려서 피는 꽃의 면모가 그려진다.

봄꽃은 대부분 작다. 맨 처음 피는 버들개지도 손톱만 한 게 별반 크지 않았다. 얼음을 뚫고 피는 복수초와 눈 쌓인 골짝의 변산바람꽃 노루귀 또한 작아서 겨우내 떨다가 간신히 핀 때문이라고 생각될 정도다.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피었지만 차가운 바람끝 앞에서도 꽃샘바람인가 싶어 지레 놀랐을 것이다. 그래서 위축된 것은 아닐지라도 동냥볕이나마 쬐고 핀 게 작으면서 어기찬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풀꽃이 아닌 개나리와 진달래도 큰 것과는 거리가 멀다. 벚꽃이니 살구꽃도 극히 작은 게 특징이다. 수많은 잎이 바람에 날리면서 질 때의 정경은 상상만으로도 깨가 쏟아질 것 같은 즐거움이다. 얼마 후 피게 될 민들레가 그나마 납작하게 큰 편이었으니 겨울에서 갓 깨어난 계절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나 보다.

이른 봄 민들레와 가시쑥새 씀바귀도 한껏 작지만 그게 약이 되는 봄나물의 특징이다. 아니 작다고만 할 수 없는 게 일부러 아주 어릴 때 캐서 먹는 것이다. 좀 더 어우러지면 또 그런대로 맛있지만 보약처럼 먹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어릴 때라야 되지 않을까. 쓴 나물이 약이라는 건 기정사실이되 봄이면 먹는 그들 나물이 속이 좋지 않은 내게는 그야말로 유익한 먹거리였다.

아직은 이른 봄, 양지쪽에 가면 이제 막 돋기 시작하는 나물이 있고 칼로 도려야 될 만치 작은 싹을 찾아다니며 약도 받지 않는 체질을 다스린다. 한여름에는 익모초가 있으나 너무 써서 먹기도 거북한 그것보다 훨씬 입맛에 맞다. 일 년도 아닌 딱 한 철뿐이었으나 그 때문에 한동안 속이 편한 걸 보면 나름대로 효과를 보는 셈이다.

작기는 하지만 그게 봄 마중물의 효시라 할까. 한 동이도 못 되는 한 바가지 남짓이었으나 팔이 아파서 작업을 중단할지언정 혹은 지하수가 바닥이 나지 않는 이상에는 계속 퍼 올릴 수 있다. 봄 역시 1년을 준비하는 마중물 의미로 본 것이다. 불씨가 어디 커서 불을 내던가. 쌀쌀한 초봄, 눈이 비로 변하고 얼음이 녹아 물이 된 바로 그 마중물이 봄을 장식하게 될 꽃을 피우고 싹을 틔우는 역할이 남다른 것이다.

작다는 게 단순히 크기를 따지는 게 아니라는 건 봄에 뿌리는 씨앗이 말해 준다. 새까만 알갱이 하나에 들어 있을 수많은 잎과 예쁜 꽃은 상상만 해도 벅찬 일이다. 그 위에 날아들 노란 나비떼와 날아다닐 하늘 역시 무한정 펼쳐져 있다. 주변의 나무에 번진 뾰족뾰족한 싹은 또 깎은 털 마냥 짧지만 잎이 트고 자라면서 한여름 폭양을 가려 줄 녹음을 형성할 테니 작다고 볼 수 없는 여지가 느껴진다.

작고 귀여운 게 봄에 나오는 것들의 속성이되 더 자라 멋대가리 없이 쇠어버릴지언정 그게 식물의 한 살이다. 냉이도 금방 뻣뻣해지는데 꽃이 필 때 따서 무치면 색다른 맛이었다. 다듬을 것도 없이 작고 토실한 것은 끝까지 앙증맞은 봄 뉘앙스 그대로다. 풀과 나물은 그렇다 해도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 또한 얼마나 귀여웠던가.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도 이른 봄 갓 깨어난 병아리를 외면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새들도 대부분 그 때 새끼를 치게 될 테니 봄도 어린아이 같은 작다고나 할 계절이었을까. 움트는 새싹 또한 잡히지도 않을 정도였으나 곧 이어 뒤덮일 초록을 생각하면 딱히 봄 아니라도 설렌다. 작은 것도 크게 받아들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큰 것이 찾아오지만 하찮게 여기고 등한시해서는 이룰 게 없다. 작고 앙바틈한 봄으로 인해서 여름의 녹음과 가을의 풍요로움을 기약하듯 우리들 작은 꿈도 세월과 더불어 자라고 연륜이 쌓이게 될 것을 꿈꾸는 것이다.

 

이정희 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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