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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하선] 피폐 나물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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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4.26 18:36
  • 기자명 By. 안순택 기자

‘논어’에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 베고 누웠으니…” 하는 걸 보면 사람의 먹거리 중 최소한의 것이 나물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흉년이나 전란의 기근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물을 알아야 했다. “한푼 두푼 돈나물, 꾸부정 휘어 활나물, 매끈매끈 기름나물, 돌돌 말아 고비나물, 칭칭 감아 감돌레, 집어 뜯어 꽃다지, 술 마셨나 취나물, 어렵사리 고사리, 주지 말라 달래야, 아따 춥다 냉이풀, 쏙쏙 뽑아 나생이, 이 개 저 개 지치기, 진미백승 잣나물, 만병통치 삽추나물.….” 그래서 남녀 없이 외워야 했던 나물타령이다.

▷아홉 살까지는 33가지 들나물 산나물 이름을 외워야만 했고, 99가지 나물을 식별할 줄 아는 딸은 결혼조건에서 선택받았다. 우리나라 산하에서 자생하는 식물은 그 종류만 4500종이나 된다 하고, 그 중 식용 가능한 것이 2500여종, 약용으로는 1200여종이나 된단다. 소가 먹을 수 있는 풀은 모두 사람이 먹을 수 있다 하니 널려 있는 게 산나물, 들나물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식물 수는 유럽 전체를 합친 것보다 많고, 더구나 대다수가 식용 또는 약용인 점을 감안하면 한반도는 가히 ‘나물왕국’이라 할만하다.

▷특히 초봄에 나는 풀은 어느 풀이나 뜯어 먹어도 약이 된다 해서 ‘백초차(百草茶)’라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부족할 때가 많았다. ‘어렵사리 고사리’라 했듯이 고사리는 이 세상 모든 나라의 약전(藥典)에 독초로 기재돼있고 목초지에서 고사제로 고사리 죽이는 게 큰일이다. 그걸 물에 우려 독을 빼는 법을 알아내 먹었으니 한국의 나물 역사는 눈물겹다. 이 야생나물들이 최고의 웰빙식단으로 거듭나고 있는 건 나물문화의 종주국으로 다이어트식품 시대의 글로벌 기류를 타고 주목되는 문화현상이기도 하다.

▷나물 좋아하는 거야 나무랄 게 없다. 공해와 농약으로부터 해방된 청정지역의 먹거리이고 나물 채취만큼 좋은 봄나들이도 없다. 세사의 잡다한 일상과 소음에서 벗어나 자연의 품에 안기는 것만으로도 값진 시간이라 하겠다. 그러나 농촌은 몰려드는 외지인들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한다. 주인 있는 밭의 것까지 손을 댄다니 나물왕국 백성 얼굴 도둑질로 먹칠하는 꼴이다. 뿌리까지 뽑아버리는 싹쓸이에 한 번 지나가면 불모지가 된단다. 내 몸 건강하자고, 남 피해주고 자연건강 해쳐서야 건강해질 수나 있겠나.

안순택<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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