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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아무도 남지 않을 때까지 숫자만 세고 있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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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7.02 19:02
  • 기자명 By. 정완영 기자

지난달 24일 오후 10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연희(83)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김 할머니는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나 5살에 서울로 올라와 서울의 한 국민학교 5학년 재학 중이던 1944년 일본인 교장에게 차출돼 일본으로 끌려갔다.

이후 일본 시모노세키를 거쳐 도야마현에 있는 항공기 부속 공장에서 9개월가량 일하다 아오모리현 위안소에 끌려가 약 7개월간 위안부로 생활했다.

김 할머니는 해방 이후 귀국했고, 위안소에 있을 당시 기억의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서 치료까지 받았다. 결국은 결혼도 하지 못하고 평생을 혼자서 보내야 했다.

앞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외한 할머니(81)가 지난달 11일 경기 광주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1934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한 김 할머니는 11살 때인 1945년 2월 일본 북해도(홋카이도)의 한 위안소로 끌려갔다. 김 할머니는 위안소에서 폭력 등 온갖 고초를 겪었고 그 때 발병한 생식기 질환으로 평생을 고생했다.

전쟁이 끝난 뒤 징용을 다녀온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경북 안동에서 삶을 이어왔다. 슬하에 4남 1녀를 두었다는 김 할머니는 남편의 권유를 받아 1998년 12월 정부에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했다. 말년에는 무릎 수술을 받고 혼자서는 걷지 못하고 휠체어에 의존해 생을 마쳤다.

같은 날 경북 포항에 사는 김달선(91) 할머니도 오후 9시 15분 포항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지난 6월에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피해자 할머니 세 명이 세상을 떠났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2일 한국과 일본에서 진행하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5·16 군사정변을 통해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의 대일굴욕외교를 50년 만에 다시 보는 듯한 상황이 벌어졌다.

50년 전 1965년 6월 22일. 박정희 정권은 대일굴욕외교를 반대하는 국민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군 병력을 동원해 진압했다.

한일수교협상에서 5억달러를 유·무상으로 제공받는 조건으로 일제 침략전쟁과 36년간의 식민지배에 관한 진정한 사과, 위안부 문제 등등의 수많은 개별 청구권을 포기한 것은 물론 어업협정에서 독도인근을 공동어로구역으로 설정해 오늘날까지 독도분쟁 시비의 빌미를 제공했던 것이다.

최근 들어 한일 관계 악화는 아베 정권이 들어서며 일본의 침략만행에 대한 역사 부정과 침략적인 군국주의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에 기인한 것이다.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를 담은 담화문을 부정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의 책임이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위안부 문제는 인신매매 피해자다” 등의 망언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독도 침략, 식민지 침탈의 역사 왜곡, 일본 자위대의 집단자위권 등 과거 일본 제국주의 침략 정책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결국 한일 관계정상화는 유럽에서 독일이 2차 세계대전 때 저지른 범죄를 사죄하고 반성하는 것과 같이 일본과 아베 정권이 과거 침략 역사를 사죄하고, 군국주의 정책을 포기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지금처럼 급 우경화의 길을 치닫고 있는 아베 정권의 상황에서는 아무리 봐도 요원하다. 이런 때에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각자 자국에서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리셉션에 참석했다는 것만으로 “양국의 관계를 앞으로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청와대의 발표문은 아무리 좋게 보아주려고 해도 어불성설이다.

지난 6월에 돌아가신 세 명의 할머니들은 모두 전쟁의 피해자로서 한평생 한을 품고 살아왔고, 끝끝내 일본의 공식 사과를 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비운을 겪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군 위안부로 끌려간 피해자가 실제 얼마인지도 정확한 숫자는 알지 못하지만 정부에 등록됐다는 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49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언제까지 우리 정부는 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죽음을 소모적으로 바라보고만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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