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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축복 받아야만 하는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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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9.14 19:0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정 여 주 청운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얼마 전 모방송의 프로그램에서 미국에서 거주 중인 사연 주인공 선영 씨와 그의 어머니가 만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어머니는 출산을 앞두고 있는 딸에게 고국의 음식과 미역국을 배달하기를 원했고, 이들 가족이 미국에서 만나는 이야기였다. 딸에게 미역국을 선사하는 특별한 이유는 선영 씨가 입양인이기 때문이다. 
 
선영 씨는 생후 4개월 때 미국으로 입양이 됐고, 미군이 돼 한국을 찾아 그녀의 가족을 찾았다. 하지만 선영 씨의 가족은 선영 씨의 존재를 모르고 살았다. 선영 씨의 친모는 조산소에서 출산을 했고, 이후 집안 어른들로부터 아이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사연에 대한 또 다른 뒷이야기는 딸만 둘 낳은 며느리가 세 번째 출산에도 딸을 낳는다면 셋째 딸을 입양 보내야만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점쟁이의 말을 듣고 집안의 어른이 선영 씨를 입양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몇 년 후 이 가족에게서 우연인지 하늘의 뜻 인지 아들이 태어났다.
 
선영 씨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린 것은 우리사회에 뿌리 깊이 존재했던 남아선호사상에 의해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한 생명이 가족에게 버림받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태아의 성별을 감별해 여아라는 이유로 많은 낙태가 이루어졌고 급기야 의료법 20조에 ‘태아 성감별 행위 등 금지’ 조항이 만들어졌다. 이 조항에 대해 2008년에 헌법재판소가 태아 성별을 알려주지 않도록 한 의료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일부 부모들은 미리 자녀의 성별을 알고 싶어 미국에서 불법으로 들여온 태아 성별 감별기를 이용하기도 하고 태아 성별을 미리 알려주는 병원 정보를 공유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초음파 사진 판독을 의뢰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의료법 20조는 알권리와 여아낙태의 위험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많은 논쟁이 되고 있는 조항이지만 여전히 이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1980-1990년대 한국 사회에서는 임신 초기 태아의 성(性)을 확인한 뒤 여아인 경우 낙태를 시키는 ‘선택적 낙태’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낙태는 물론 성 감별 자체도 불법이었지만, ‘선택적 낙태’라는 비도덕적인 현상은 멈추지 않았다. 어느 시기 어느 사회에서나 여아 출생아 수를 100으로 했을 때 남아 출생아 수는 105 정도가 정상이지만, 1990년대 중반 한국에서는 이 비율이 115 수준이었고, 둘째 자녀의 경우에는 120을, 셋째 자녀 이상인 경우에는 무려 200을 넘어섰다.
 
하지만 그토록 튼튼해 보였던 출산아의 성비 불균형의 끈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언제 그랬었느냐는 듯이 사라졌다.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이 남아선호 의식은 급속도로 희박해졌고, 여아 100명당 남아 출생아 수는 105명으로 완전히 정상적인 수치를 보이고 있다. 불과 10여 년 사이에 이러한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베트남, 중국, 인도 등의 여러 나라에서 남아의 출생성비가 압도적으로 높고 여아낙태는 하나의 사회적인 문제이지만 한국은 정상화를 이루어낸 것이다. 
 
호주제도 폐지 등 성평등 확산을 위한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지만 ‘아들 딸 구별 말고 무조건 낳지 말자’는 현상의 확산이 아닌가 걱정이다. 저출산은 성비 불균형만큼이나 한국 사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물론 산업화 사회로 넘어가면서 출산율이 저하하는 것은 다른 국가들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너무 빠르고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 3포에 더해 내 집 마련,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이들을 5포 세대라고 일컫는다. 이러한 세대가 왜 자식을 낳는 의무를 다하지 않느냐고 비난하기보다는 그들이 자식을 낳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길 수 있도록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정 여 주 청운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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