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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아침에] 아버지의 똥 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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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2.14 16:0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허 영 희 대전 보건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지난 설을 앞두고 걱정에 빠졌었다. 까치까치 설날인데 일찌감치 걱정이 태산이었다. 또 다시 친정집에선 아버지와 큰 동생의 한바탕 전쟁이 시작될 것이고, 상상하기 싫은 무안함에 나는 또 어찌해야하나. 사실, 친정아버지의 똥고집으로 몇 년째 친정 식구들의 명절 날 차례 지내기가 많이 불편해졌다. 그 이유는 친정아버지의 엉터리 ‘어동육서(魚東肉西)’ 주장과 ‘홍동백서(紅東白西)’ 주장 때문이다. 친정아버지의 연세가 올해 들어 83세이신데, 어찌된 일인지 아버지의 고집이 점점 단단해져간다는 것이다. 노인의 고집을 보고 있자면, ‘예순이면 무슨 말을 듣던지 순하게 들린다’는 공자의 말은 그 시절에도 노인의 생각은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바뀌어야 한다고 이른 말인듯 하다.

청년이 노인이 되면 체력은 약해지지만 경험과 연륜은 쌓여간다. 운동선수의 감독은 체력이 약해 기량은 현역 선수보다 훨씬 못하지만 기술지도는 잘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노인들은 경험과 연륜을 내세워 자식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그저 심어 주려고만 하는 경향이 있다. 시대의 변화에 둔감하여 과거의 것이 더 좋거나 옳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예전에는 그렇게 하지 않고 이렇게 했다’고 말하면서 과거지향적인 고집들을 주장한다.

나이가 많아지면 체력은 약해져도, 경험과 연륜은 많아진다. 그것을 자식들에게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그걸 지혜로 승화시켜 서로 화합하는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 부모의 오래된 경륜과 자식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조화를 이루어 더 나은 쪽으로 향할 수 있다.

친정아버지의 똥고집은 지혜로운 노인의 고집이 아니라 그저 나이 많은 노인들의 일반적인 똥고집으로 자녀들에게 비추어져 걱정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는 저서 중 크리톤 파트의 내용에서 ‘노인의 고집’이라는 중심어가 있다. 기억나는 줄거리는 이러하다.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사형집행 하루전날 친한 벗인 크리톤이 감옥을 방문하였는데,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게 탈옥하여 다른 나라에 가서 사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거절하였다. ‘70세 평생을 아테네 법을 따라 잘 살았었고, 그전에 마음만 먹었더라면 얼마든지 아테네 법의 구속을 벗어 날수도 있었지만 아테네에 머물기를 결정 한 것은 바로 내 자신이었네. 그런데 지금에서 내가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하여 아테네 법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하면서 아테네를 떠나는 것은 옳지 않네’라고 하였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탈옥하여 생존할 수도 있었는데 사형되어졌고, 내 기억속에서 소크라테스는 똑똑한 노인, 고집의 센 모습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노인과 어르신의 차이를 나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노인이란 이제 배울 것이 없어 자기가 최고인양 생각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이란 언제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노인은 늙은 사람이고 어르신은 존경 받는 사람이다. 황혼에도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었던 괴테는 노년에 관한 유명한 말을 남겼다. “노인의 삶은 상실의 삶이다. 사람은 늙어가면서 다음의 다섯 가지를 상실하게 되는데 건강, 돈, 일, 친구, 그리고 꿈이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이하게 될 노년이 되어 간다. 나의 친정아버지도 괴테의 말을 음미하면서 자녀를 지배하려고 하는 아버지보다는 스스로를 절제할 줄 알고, 알아도 모른 체 겸손하며, 느긋하게 생활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살아 가셨음 좋겠다.

올 설에는 요사이 뜨고 있는 이애란 님의 백세인생 CD를 친정 아버지께 선물로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백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 그리고 제사상 차릴 때 제대로 된 어동육서(魚東肉西), 두동미서(頭東尾西), 좌포우혜(左脯右醯), 조율이시(棗栗梨柹), 홍동백서(紅東白西)을 지켜달라고도 말씀드리고 싶었다.

허 영 희 대전 보건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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