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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아침에] 노정(路程)의 설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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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3.27 13:48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정 관 영 공학박사·충청대 겸임교수

무심코 길을 가다 들어선 식당에서 잘 끓인 청국장이나 고소한 참기름으로 무친 산나물을 대할 때는 행복한 마음이 든다.
어느 날 밤 잠결에 부엌의 부산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양철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 도마질 소리, 냉이국 내음이 구수하다.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요즘은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이제는 밥상이 거의 사라지고 부엌의 공간은 식탁이 차지하고 있다. 유년 시절 밥상에 온 식구가 둘러 앉아 밥을 먹었다. 밥상에는 고사리, 두름, 씀바귀, 참쑥, 정구지, 냉이, 돈나물 등 산나물 반찬이 풍성했다.

밥상에 둘러앉아 몸을 부대끼며 밥을 먹던 낡은 밥상, 네 귀퉁이가 조금씩 닳아져 나무의 속살이 드러난 작은 밥상이 그립다. 이렇듯 '가족'이란 공동체의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종종 제주를 가게 될 때마다 필수 코스로 올레길을 찾는다. 올레길을 걷노라면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사연들이 묻어난다.
가슴깊이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한 연인, 치열한 경쟁에서 몸과 마음이 지쳐버려 자신을 되돌아보고픈 직장인, 입대 전 마음을 정리하고픈 청년, 서먹했던 아버지와 함께 걷는 머리가 커버린 고등학생 아들, 몇 십년동안 누구 엄마라 불리며 자신의 이름을 잊고 사는 어머니와 그 길을 함께 걷는 딸, 그리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홀로 걷는 이들… 올레길은 이 모든 사람들의 사연들과 상처들을 보듬고 위로해 주는 길이다.

겨울인가 했는데 어느새 봄이다. 지구촌 기후온난화 현상으로 인한 절기가 빠르게 바뀌어 가는 것을 느낀다. 사람들은 자연을 파괴함에도 자연은 언제나 우리들을 보듬어 준다.

자의든 타의든 현대에 사는 우리 모두는 IT(Internet Technology)시대에 살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상상을 초월하는 신비롭고 놀랄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보여져왔던 것보다 나타나지 않았거나 숨겨져 있었던 새로움이 드러나고 있다.
아날로그(Analogue)적 미감에 감흥하기보다는 디지털(Digital) 취향에 매료되어 가고 있다. 앉으나 서나 어디에서든 손안에 쥐어져 있는 모니터와 가까워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첨단과학으로 치닫는 인간의 욕망이기도 하지만 미래로의 만남을 더 열망하는 현대인의 바람에 부응하고 있음이다. 어느 누구도 아이티(IT)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함께 가는 디지털로그(Digitalogue)가 도래되었다.

우리의 하늘은 높다. 그리고 푸르다. 하늘이라는 자연산 모니터에 가까이 다가가면 꿈과 이상, 그리고 가능성을 만나고 이룬다. 밤하늘에 가득한 빛나는 별을 헤아리고 볼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이자 은총이다.

자연을 품고 있는 산에 오른다. 산세가 험하지도 않고 높지도 않은 완만한 나지막한 산이다. 걷기에 편하고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 홀가분한 기분으로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기에 알맞은 장소다.

산속에 들어서면 나뭇잎에 가리워진 틈 사이사이 조각하늘에서 쏟아지는 맑고 밝은 빛이 깊고 어두운 산길을 밝힌다. 군데군데 쉬어갈 수 있는 쉼터도 마련되어 있고, 체력을 단련하는 운동보조기구도 설치되어 있다. 자연과 함께하며 건강을 얻는다.

산에 오른 사람들에 의해 다져진 꾸불꾸불 휘어진 산길을 따라 산행을 즐긴다. 오고간 산객들이 남긴 발자국과의 만남도 반갑다. 길섶에 피어난 산꽃도 만나고 실바람에 흩날리는 숲에서 뿜어내는 향기로움도 느낀다. 하얀 햇살에 빛나는 싱그러운 나뭇잎과도 눈을 맞춘다. 산의 소리에 실린 산새들의 지저귐이 발길에 머문다.

산속에 빼곡히 들어선 나무와 숲속의 풀들은 바람, 그리고 빛과 함께 어우러져 자신들의 모습을 뽐내며 뚜렷한 그들만의 존재를 자랑한다. 오랫동안 그래왔듯이 자연은 모든 사물의 본질이다. 수많은 언어 중 가장 본질에 가까운 아름다운 언어이다.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자연은 여전히 아날로그에 머물고 있다.

아름다움을 잉태한 자연에 다가가면 자연의 다양한 형태 및 구성에 따라 조화를 이룬 아름다움을 만난다.

내 인생길에 지금 이 순간이 기회다. 하루 중에 해가 뜨고 일할 때가 있는가 하면, 해가 지고 어두움이 찾아오면 일할 수 없는 때가 반드시 오게 된다. 인생길도 젊고 건강해서 일할 때가 있는가 하면, 늙고 병들어서 일할 수 없는 때가 반드시 찾아오게 된다. 우리 인생길에서 움직이고, 말하고, 보고, 들을 수 있는 이때가 곧 기회다.

인생길에서 하루의 시작을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은총이다. 따스한 어머니 품이 살포시 가슴에 와 닿는다.

 

정 관 영 공학박사·충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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