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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아침에] 구마모토(能本) 지진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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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4.24 14:51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정 관 영 공학박사·충청대교수

최근 세계 주요 지진대에서 지진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지난 14일 일본 구마모토(能本) 현에서 진도 7(리히터6.4)규모의 지진과 연이은 강진으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에 피해를 입었다.

지진이 많은 나라, 이미 자연에 대해 공포의 경험을 어느 나라 보다 많이 해왔던 일본인들은 언제나 이러한 죽음의 위협 앞에 놓인 역사적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자연과학기술의 발달로 이러한 재난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해왔지만 자연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하다. 일본의 종교인 신도가 왜 그리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숭배의식이 깊이 배어있는지 깨닫게 된다.

일본의 기술은 세계의 최고이다. 건축공사를 보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철저히 공사를 함은 물론 공사비가 많이 들고 공사기간이 길기로 유명하다.

구마모토(能本) 지진은 단발성 지진과는 차원이 다르다. 30분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찾아오는 여진이 주범이다. 하루에 100여 차례 넘게 반복되는 아비규환의 상황이 이웃한 일본의 현실이다.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 일본의 재앙 앞에 만감이 교차된다. 그들과 우리의 오랜 감정 때문인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한편 대재앙 앞에 소름끼칠 정도로 냉정하고 침착한 일본인들의 시민의식은 남달랐다. 크게 분노하지도 낙담하지도 않는 표정이다.

구마모토에서 후쿠오카(福岡)로 탈출하는 수 백 미터의 자동차행렬이 대표적이다. 차선을 잘못 든 취재진의 차량이 끼어들기를 해야 할 난감한 상황에도 누구하나 경적소리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길을 터주었다. 통제요원 한 명 없이 이렇게 교통상황이 유지되는 모습은 부럽기까지 하다.

긴급 대피소에서 주먹밥 1개를 받기 위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사람 중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굶주렸지만 책임자 나오라고 호통 치는 사람도, 새치기를 하거나 이를 의심하는 사람도 없었다.

일본인의 침착한 대응은 자신보다 사회전체를 중시하는 집단의식, 이웃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메이와쿠(迷惑)' 문화 같은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재해를 당해 모두가 어려운데 나만 잘살려고 하다가는 결국 공동체 일원으로 버티기 힘들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행동했다.

일본인들은 어릴 때부터 겸손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교육의 핵심가치로 삼고 훈련을 받는다. 자신의 감정이나 능력을 집단속에서 크게 들어내지 않음으로써 다른 구성원에 대한 배타성이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일본 특유 집단주의의 특징이기도 하다.

'나 하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은 오랜 학습과 훈련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무리 속에서 매뉴얼화 되어있는 시스템에 순응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절대적인 신뢰가 개개인의 공공질서의식을 더욱 견고하게 한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섬나라이기에 자기들의 문화에는 종족적 동질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농경생활을 하면서 집단적 협력이 식량을 생산하거나 잦은 자연재해로부터 생존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오랜동안 학습해 왔다.

이런 지리학적 배경이 고대부터 집단의 질서를 어기는 무리를 솎아 낸다는 '무라하치부'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는 지금까지도 일본사회 속에서 일본식 집단주의를 나타내는 대명사가 되었다.

이웃나라 일본의 재앙을 보면서 우리라면 국민들이 어떤 모습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겸손과 배려의 미덕이 있을까. 공공질서 의식은 어떨까. 국민들의 정서는 어떨까.

우리는 수 천 년 간 외세의 침략을 견디고 36년간 국권을 침탈당하며 동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하였다.

오늘의 현실이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과 다소 멀게 느껴질지라도 큰마음으로 포용하며 현실속의 결핍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겠다.

여전히 과거사 하나 청산하지 못하여 이웃나라들에게 공분을 사고 이율배반적인 일본.

그러나 자연재해로 어느 때 보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 때에 인류애로 진심어린 위로와 도움을 보낸다면 세계 언론은 집단주의 속에서 훈련된 일본인들의 질서의식에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용서할 수 없는 이웃나라 일본이 처한 어려움에 진심어린 위로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통 큰 대한민국을 응원하지 않을까.

세상을 얻는 일은 세상의 마음을 얻는데서 출발한다.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얻고자 한다면 함께 살아가는 이의 가슴을 움직이고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지구촌에는 되돌려 주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일본 하나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리기 위한 마음으로 나서야 한다.

 

정 관 영 공학박사·충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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