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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계단을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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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4.27 15:14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 정 호 백제문화원장

“삶에는 수많은 계단이 있다, 뛰지 마라, 조신하게 밟아라”
집 계단을 오르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허망하게 굴러 떨어져 바닥에 고꾸라졌다. 얼굴이 긁히고 눈두덩이 찢겨 피가 흘렀다. 응급실에서 상처를 꿰매고 정신이 들고 나니, 깨진 안경 사이로 계단들이 줄줄이 어른거렸다. 큰일 날 뻔 했다. 3층 주택에 살면서, 늘 다니던 길이다. 나는 날마다 수없이 많은 계단을 무심코 오르고 내렸다. 그 계단이 새롭게 눈에 들어 왔다. “아, 거기에 계단이 있었구나!” 평소에 우리는 계단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산다.

이들은 질색을 한다. 장애인들은 휠체어를 타고 오르내릴 수 없다.   
그러나, 계단은 고마운 존재다. 계단은 통로다. 층과 층 사이를 이동하게 해주는 수단이다. 높이가 다른 곳으로 움직일 때 밟고 오르내릴 수 있도록 여러 턱으로 만들었다. 계단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밖에 나갈 수도, 들어올 수도 없다. 계단이 없었다면, 인류 문명은 존재하지 아니했을 지도 모른다. 사다리를 타고 오르다가 계단을 타고 오르며 진화했다.

궁궐, 사찰, 성곽, 종탑, 망루, 정자, 어느 곳에도 계단이 있다. 나무나 돌에서, 철이나 콘크리트로 재질이 바뀌었다. 직선형, 원형, 나선형 등등 종류도 다양하다. 도시 건축이 입체화, 고층화함에 따라 계단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계단을 설계하는 사람들은 실용과 미학을 투영한다. 

주택 내부계단도 있고, 외부계단도 있다. 외부계단은 대부분 공용이다. 다락방을 오르내릴 때 삐걱거리던 계단 소리는 귀에 쟁쟁하다. 벽화마을에는 꽃, 물고기를 그려 꽃계단, 물고기계단이 이름을 타기도 한다. 등산로 계단길에서 사진을 찍는 풍경은 익숙하다. 경기장, 영화관 관람석도 계단이다. 계단에 앉아서 운동경기를 보고, 영화를 본다.

지하철 계단은 압권이다.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로 대체해도 너무 많아 어찌 할 도리가 없다. 계단 오르기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칼로리 소모가 많아 체중감량에 효과가 크다. 에너지 절감과 건강증진, 일석이조다. 소모 칼로리와 수명 연장이 표기되어 있다. 한 계단 오르면 4초의 수명이 연장된다고 쓰여 있다. 심폐기능 향상, 뇌기능 향상, 근력을 키우는 데 좋다고 한다. 무릎을 쭉 뻗듯 올라가면 예쁜 엉덩이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건강계단, 기부계단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에펠탑 계단 빨리 오르기 세계대회도 있었다.

계단식 논도 있다. 필리핀의 계단식 논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계단식 사고는 여러모로 인간을 유용하게 지배해 왔다. 계단은 일을 하는 데 밟아야 하는 순서를 뜻하기도 한다.

계단은 통로다. 통로의 기능은 소통이다. 음식점이나 노래방, 상가 비상계단에 물건을 쌓아두면 안 된다. 소방법에 저촉된다. 비상탈출 계단을 막으면 어찌 하리.

하늘계단, 구름계단, 빛의 계단도 있다. 계단, 어디까지 올라가 보셨나요?

계단은 욕망이며 꿈이다. 계단은 인생사다. 무거운 짐 지고 계단을 올라가 본 사람은 그 힘듦을 안다.

헤르만 헤세는 ‘생의 계단’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썼다.

“모든 꽃이 시들 듯이/ 청춘이 나이에 굴복하듯이/ 생의 모든 과정과 지혜와 깨달음도/ 그때그때 피었다 지는 꽃처럼/ 영원하진 않으리.”

계단을 바라보면서, 부질없는 생각을 한다. 내 생의 계단, 어디쯤 딛고 있는 것인가? 분명,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도 있고, 지옥으로 향하는 계단도 있을 터, 나는 어느 계단에서 헤매고 더듬적거리고 있는 것인가? 삶에 정답은 없다.

이미 주어진 것들만이 정답은 아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인가? 세상이 뒤집어지는 재미만 기대하다보니, 소소한 일상의 재미는 별로다. 세상은 뒤집어지지 않고 내 속만 뒤집어진다.

재미는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계단과 재미있게 친해지고 싶다. 그래도, 무엇인가 못내 미진하다.

계단에서 헛디딤을 당해본 사람은 안다. 살아 있는 동안 나는 계단 앞에서는 호흡을 가다듬을 것이다. 계단에서 넘어진 자의 넋두리다. 삶에는 수많은 계단이 있다. 어린이든, 노약자든, 젊은이든 모름지기 계단을 조심하라. 껑충껑충 뛰지 마라. 오른발 왼발 호흡 가지런히, 한 계단 한 계단 조신하게 밟아라.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더 조심하라. 계단의 존재를 겸허하게 새겨라.
계단에 물청소를 한다. 내가 넘어져 피 흘린 자리, 흔적이 없다. 내 얼굴에만 상처가 남았다.

 

김 정 호 백제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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