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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아침에] 짬짜면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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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5.08 13:4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 세 원 대전과학기술대 사회복지과 교수

고등학교 교련선생님의 얘기가 나오면 뙤약볕에서 연습했던 분열이 생각나곤 한다. 군복을 입고 짙은 선그라스를 낀 선생님은 ‘일사분란(一絲不亂)’하게 움직일 것을 요구하며, 일정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얼차려를 주곤했었다. 운동장을 사열 횡대로 돌다 보면 이마에 땀이 맺히고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했지만, 선생님의 날선 목소리와 몽둥이가 무서워 혼신의 힘을 다했던 기억이 새롭다.

후일 대학에 들어가 그것이 ‘군사문화의 잔재’로 불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대학의 봄이 오기까지 3년 동안 교련은 이어졌고, 획일성과 복종을 강요받았다. 중학교 때부터 동질성과 순응에 길들여진 청년들이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데는 큰 용기기 필요했다. 그래서 70년대에 대학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젊음과 미래를 걸고 투쟁한 운동권들에게 ‘마음의 빛’을 갖고 있다.

386세대들은 지금의 청년들보다 쉽게 직장을 잡을 수 있었지만, 획일과 무한책임의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던 기업문화 속에서 자신의 주장을 펴지 못했다. ‘자기주장을 펴기보다는 참고 인내하며 상사의 말을 따르라’는 직장생활의 지침은 그 어떤 명제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다. 세계사에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압축성장을 이루면서 조직의 ‘불법 부당’, ‘불합리’, ‘부정’, ‘불공정’ 등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역적’이나 비겁한 또는 위험한 사람’으로 분류되어 왔다.

종종 용기를 내어 조직의 부정의와 비리를 밝혔던 사람들의 말로는 그다지 밝지 않았다. ‘영웅’으로 대우하는 것 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세상과 등지고 숨어사는 삶이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자신과 가족의 안일을 포기하고 ‘양심의 소리’를 냈던 용기있는 사람들의 흔적을 찾고 기리는 사회환경은 조성되었어야 마땅했다.

“우리사회가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져본다. 여전히 대다수 기업에서는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상급자 혹은 주류와 다른 의견은 무시되곤 한다. 특히나 오너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금기가 된다. 공조직도 예외는 아니다. 바른 말을 하면 조직에 해가 되는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이런 인식은 생존의 전략으로 공유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설득력과 힘을 얻게 된다.

이유있는 반대조차도 용납하지 않는 조직의 분위기는 분명 잘못 된 것이다. 그래서 기업과 조직이 받아들였던 것이 악마의 변호사제도다. 이 제도는 카톨릭 교회의 시성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거짓이나 증거의 결함을 찾아내는 역할을 하는 사람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회의를 하면서 ‘반대’나 ‘다른’ 의견이 하나도 나오지 않을 경우 그 회의는 무효가 되도록 강제하는 조직들도 있다. 반대의견이 나오지 않은 회의는 계속할 당위성을 잃는다는 것이 제도 운영자들의 주장이다. 과연 우리의 조직들은 ‘이유 있는’혹은 ‘이유 없는’ 반대를 할 수 있는 조직인지 진단해 봐야 한다.

식상한 말이 되어버렸지만 남이 해 놓은 것을 따라가서는 승산이 없다. 남들이 걸어가지 않은 길을 가야하고,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생존하는 세상이다. 처음해보다 보니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고, 생각지도 못한 위기와 직면해야 하며 선두주자를 따라 갈 때는 들어가지 않았던 정찰비용도 치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꼭 필요한 것이 창의성이다. 급하게 필요한 창의성이지만 경직된 문화 속에서는 절대 만들어 질 수 없다.

어린이들은 다른 생각과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사회화가 되어가면서 이런 강점은 희미해져가고 획일과 고집, 차별을 강요받는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사소한 것도 결정하기 어려운 결정장애를 보이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우려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거창하게 창의성 운운하기 전에 다른 의견부터 온전히 수용하는 문화부터 조성되었으면 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과 행동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일도 양방향의 다양한 소통이 전제되어야 한다. 짜장면이냐 짬뽕이냐의 단일 선택을 어려워하던 사람들이 중국집 사장들과 소통해 만들어 낸 것이 ‘짬짜면’이다. 상대방의 생각과 욕구를 이해하고 충족시키려는 노력이 함께 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짬짜면’을 만들어 낼 것이다.

 

김 세 원 대전과학기술대 사회복지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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