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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완장(腕章)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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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9.22 16:4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 혜 숙 수필가
[충청신문=이혜숙 수필가] 완장이 팔에 채워진 순간 힘이 되었고 권력이 되었다. 사회주의 국가를 찬양하는 북한이 같은 민족인 남한을 침범하면서 일어난 전쟁. 그들은 지주에게서 머슴살이하는 사내들에게 빨간 완장을 채워주었다. 북한 공산당은 부르주아를 처단한다는 미명아래 지주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인민군을 대신해서 주인을 죽창으로 살해하고도 머슴은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것이 옳은 길이라는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머슴은 팔에 찬 붉은 완장의 힘이 바로 법인 줄 알았을 것이다. 
 
시골로 오면서 문화적 갈증을 어떻게 풀까하다가 면사무소 홈페이지를 찾았다. 여러 가지 주민자치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있었다. 나는 주민자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면사무소 문을 두드렸다.
 
그곳에서 수필과 스포츠 댄스를 배웠다. 배움에 재미가 많은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참여했다. 직전 위원장은 프로그램을 돌아보며 더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다. 참여하는 주민의 불편은 없는지 살피며 건의 사항이 있으면 하라고 했다. 그런 위원장의 임기가 끝나고 다른 주민이 새롭게 주민자치 위원장이 되었다.
 
어느 날 새 위원장이 수업하고 있는 교실로 들어왔다. 인사차 왔거니 하고 우리는 반가워했다. 그런데 인사는 하지도 않은 채 우리에게 방을 빼라는 거였다. 소회의실로 쓰고 있는 곳은 우리가 공부를 하는 교실이지만 위원장 방이기도 하다. 주민자치 건물이 따로 없는 상황에서 매일 출근하는 것도 아닌 위원장 방이 우리의 교실이 된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와서는 대 회의실로 옮기라는 것이다.
 
대회의실은 교육과 회의가 잦아서 수업하기가 불편한 곳이다. 회의가 없을 때만 대회의실에서 하라는 것이다. 대회의실에서 수업하다가 회의나 교육이 있을 때는 소회의실에서 하란다. 5년 넘게 이어온 방식을 단번에 바꾸라는 것이다. 옮겨 다니면서 수업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15명 정도의 회원밖에 되지 않는데 대 회의실을 쓴다는 것 자체도 비효율적인데도 말이다.
 
대화는 아예 단절하면서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주민을 위하라는 주민자치 위원장이 주민위에 군림하고 있다. 대단한 벼슬의 감투를 썼나보다.
 
내가 아는 친구는 대학원 박사 과정을 공부해서 논문 심사만을 남겨두고 있다. 지방에서 매일 서울로 출. 퇴근을 한다. 지도교수란 제자들이 박사 학위를 딸 수 있게 논문을 지도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게 아닐까. 나이 들어 학업에 대한 열정으로 힘들게 공부하는 사람들을 배려해주면 얼마나 좋을 텐데. 늦은 나이에 공부한다고 서울을 오가는데 교통비도 많이 들어간단다. 학교에 가서 제대로 지도를 받는다면야 걱정이 없지만 지도는 받지도 못하고 할 일없이 교수의 지시만 기다리다가 돌아오는 일이 자주 있는 것 같다. 두 달도 남지 않은 시간임에도 포기하고 싶다고 할 정도니 얼마나 힘들면 그런 말을 할까. 다혈질인 나 같으면 벌써 포기했을 것 같다. 
 
교수가 된다는 것은 지식은 기본이고 인격이 완성되어 우수한 인재를 기르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 꼭 그렇지만은 아니란 것을 알았다. 박사학위를 따려면 논문만 잘 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박사학위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못된 짓을 하는 교수가 고발되는 사회가 이 나라는 것이 안타깝다. 
 
요즘은 보이지 않는 완장을 찬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소비자가 왕이라는 허명아래 힘을 행사하는 사람이 있다. 백화점에 가서 직원을 자기가 부리는 사람으로 착각했는지 무릎을 꿇리는가 하면 소리를 질러 종업원을 당황하게 만드는 사람. 어깨에 힘주고 걸핏하면 사장 불러오라고 외치며 종업원을 무시하는 어이없는 소비자. 돈이란 완장인가 보다. 
 
직원을 무시하고 폭력도 행사하며 인격을 비하하는가 하면 되지도 않는 약속을 이행하라는 무식한 사업가.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땐 가차 없이 해고해 버리는 힘의 완장을 찬 기업주. 종업원도 내 가족이고 직원도 내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면 그러지 않을 텐데. 
 
어깨에 힘 빼고 허울의 옷을 훌훌 벗어 던져버리고 서로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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