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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인간적 철학과 자연친화적인 미학의 도시를 꿈꾸며

이상호 전 천안월봉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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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9.25 14:41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 상 호 전 천안월봉고등학교 교장
[충청신문=이상호 전 천안월봉고등학교 교장] 지난 여름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 산 좋고 물 맑은 곳으로 천렵을 갔다. 지인들이 매운탕 끓일 준비며 각종 먹을거리도 장만해 갔다. 제법 큰 계곡이 산허리를 감아 돌고 넓은 하천부지도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골바람도 불어와 시원함과 함께 시골 정취를 더해 주었다. 
 
시간이 흐르고 술도 몇 잔 돌았다. 함께 간 벗들은 물고기를 잡는다며 냇물로 뛰어 들었다. 나도 함께 가려는데 하천가 하늘에 제법 많은 고추잠자리가 날고 있었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고추잠자리에 넋이 빠졌다. 냇가에 앉아 오래토록 고추잠자리를 바라보며 향수를 끄집어냈다. 
 
산골을 감아 도는 냇가는 시원하고 통풍이 잘되는 곳이었다. 폭염의 여름이지만 때 아닌 초가을의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 같았다. 그곳에 고추잠자리가 있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 아닐까? 
 
고추잠자리는 가을의 상징이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가을 들판의 하늘에 고추잠자리 떼가 평화롭게 떠 있는 모습, 특히 해질 무렵에 가을바람과 함께 찾아온 고추잠자리는 나에게 평화와 낭만이 상징이었다. 그런데 가마득하게 잊은 그 추억을 다시 맛보게 되었으니 넋을 잃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산업화와 더불어 시작된 도시화는 문명의 상징이다. 그런 가운데 우린 숨 막히는 도시 생활을 해 왔고 앞으로도 해 갈 것이다. 도시화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도시는 엄청난 높이의 빌딩이 숲을 이루고 녹지는 조성된다고 하지만 거의 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 개발된 도시를 보면 길은 쭉 뻗어나지만, 높은 빌딩과 미학을 살린다는 핑계인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휘어진 이면도로는 바람의 길을 막는다. 아파트 단지는 조금이라고 더 많은 건축을 위해 배치하다보니 곳곳이 막혀 있다. 한 때 유행하던 타워형 아파트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가구를 넣기 위해 나타난 것이었다. 새로 지어지는 학교는 (ㄱ)자형, (ㄷ) 자형,  (H) 자형이 대세를 이루고 있어 일부 교실들은 채광과 통풍이 되지 않는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 통풍, 물, 채광의  세 가지를 중요한 요소로 들고 있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살기 좋은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난 이 세 가지를 한마디로 소통이라고 표현한다. 소통은 도시를 건설하는데도 집을 짓는데도 사람이 사는데도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옛날에는 통풍이 잘 되지 않는 곳은 마을이 형성되지 않았다. 통풍이 되지 않아 괴질이 돌면 모두가 죽게 되며, 악취 등이 빠져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채광은 매우 중요한 조건이었다. 햇빛이 들어야 식물이 자라고 음지가 마르며 사람이 살아갈 수 있고 세균이 죽는다. 물은 말할 것도 없다. 물길은 생존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면서 재해를 막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현대의 도시는 그 소통을 막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남향 건물을 최고로 치는 것은 통풍과 채광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상업적인 가치에 우선하여 도시를 설계하고 집을 짓기 때문에 통풍과 채광은 그리 염두에 두는 것 같지 않다. 물길은 인위적으로 해결한다고 하지만, 가뭄으로 보령댐의 물이 바닥 나려하자, 금강에서 물길을 내어 해결하려한 것처럼 심한 가뭄이 닥치면 해결할 길이 묘연해진다. 동서남북을 향하는 높은 건축물들은 채광과는 무관하다. 그래서 24시간 전기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어둡다. 옛날의 학교는 거의 일자형 정남향 건물이었다. 그래서 한낮에는 교실에 전등을 켜지 않아도 공부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전등을 켜지 않으면 공부할 수 없다.  
 
요즈음 와서 한 때 유행하며 인기가 있었던 타워형 아파트가 배신을 당한다. 채광과 통풍에 문제가 많아 입주자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많은 깨달음이다. 그런 깨달음이 아파트만이 아니라 도시설계와 학교 설계 등 모든 곳에 적용되면 참 좋겠다. 
 
도시에도 녹지와 공원이 있다. 그런데 그곳의 가을 하늘에 고추잠자리가 없다. 도시 공원의 가을에 고추잠자리가 사라진 것은 단지 소독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도시 공원이 때로는 음산하고 통풍이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 도시가 팽창하며 신도시가 개발되고 있다. 시골의 넓은 학교는 폐교되면서 도시의 비좁은 곳에 신설학교가 세워진다. 그런 곳을 보면 여전이 어떻게 하면 건물을 더 많이 지을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또 도시설계자의 미학적 철학인지는 모르지만, 도로가 90도로 휘어지고 대형 건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특히 바람 길과 햇빛을 막는다. 비싼 땅값에 보다 많은 건물을 세우고 땅의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게 아닌 것 같다. 
 
전통 한옥 마을을 보면, 채광과 통풍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었다. 빼곡하게 들어섰지만 시원하다. 자연의 성질을 살리고 인간적인 배려를 우선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도시는 상업적·경제적 가치를 최우선 하였기에 통풍과 채광이 잘 되지 않는 답답한 도시가 되었다. 
 
앞으로도 신도시는 계속 설계되고 고층 건물은 계속 들어 설 것이다. 특히 충청권은 천안 신도시 건설, 아산 신도시 건설, 세종시 건설 등 전국 어느 곳 못지않게 개발과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 엄청난 계획 하에 추진되는 도시들이 벌써부터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도시설계와 건축에 있어 인간적 철학과 자연친화적인 미학의 빈곤에 있다. 이제 범국가적으로 도시설계와 건축에 지금까지 경제적인 가치에 밀려 등한시 되었던 인간적 철학과 자연친화적인 미학이 절대 중요한 요소로 가미되었으면 좋겠다. 바람 길과 채광을 최대한 살리는 도시설계와 건축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그러면 도시의 가을 하늘에서도 고추잠자리의 평화로운 놀이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인간적 철학과 자연친화적인 미학이 살아 숨 쉬는 소통의 도시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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