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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 생활 1%를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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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09.08.10 19:16
  • 기자명 By. 충청신문/ 기자
내가 교직에 몸담아 지금까지 99%의 시간이 흘렀고 앞으로 남아 있는 몫은 고작 1%이다. 나의 삶에 대해 이제 예비결산을 해 보아야 할 때다. 10대, 20대는 꿈이 있어야 하고 30, 40대는 멋이 있어야 하며 50, 60대는 품위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과연 나는 교사로서의 품성에 모자람이 없었는가, 소명에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뉘우침과 함께 고달픈 생활에 짓눌린 푸념을 해 본다. 이렇다 할 무엇하나 크게 이루어 놓은 것은 없지만 교사, 교감, 교장, 교육과장, 교육장을 하며 지낸 세월이 어언 41년 6개월 대과 없이 지내고 나니 나의 인생은 분명 큰 성공은 아니지만 실패한 것만은 아닌 듯 싶다.

그러나 교직은 아무나 만만히 보고 뛰어 들 안락의자 같은 것은 더구나 아니었다.

내가 60년대 말 처음 교직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교직경력 30주년을 맞아 기념식을 하시는 선생님을 보며 어찌나 존경스럽고 경이로웠던지......머리카락은 하얗게 서리가 내렸고 주름살은 자극자글 하시고 어떻게 30년을 한 직업에 종사하셨을까 놀랍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어떤가? 40년도 아닌 41년 6개월을 오직 한 직업에 종사하지 않았는가 나의 마음은 아직도 젊고 패기 있는 청춘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젊은 선생님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볼까?

지나간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간다.

교직에 있으면서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열정과 사랑으로 2세 교육을 하는 것은 진정한 기쁨이었으며,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 제자들이 스승의 날이나 명절 때 인사하러 와서는 그래도 선생님한테 배울 때가 가장 인상 깊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는 인사치레 일지 몰라도 제자들의 말에 공연히 고무되어 교육의 끈을 놓지 못하고 지금껏 한 우물을 팠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또 하나 우리 아버님의 경험에 의한 가르침이 더 컷 던 지도 모르겠다.

우리 선친께서 젊어서 군청에 근무하시다 회사가 보수가 높고 대우가 좋다고 자리를 옮겨 좋은 관사에서 호의 호식하셨지만 정년이 짧아 50세에 그만두시고 다른 직장을 옮겨 다니시며 고생하셨지만 처음 같이 군청에 근무하던 다른 아버님 친구 분들은 늦게까지 공무원 생활을 하시고 군수, 시장 등 고위 공무원을 하시는 것을 보고 저의 선친께서 “너는 나 같은 전철을 밟지 말고 한 우물을 파라”고 말씀하시어 그 말씀 때문인지 아니면 사명감 때문인지 어찌 됐던 오늘의 내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부모님이 똑 같이 89세에 돌아가시며 내가 교장, 교육장 되는 것을 보지 못하시고 돌아가셨지만 지하에서도 기뻐하실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접장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속담이 생겨난 서당 교육 시절에도 소수의 제자를 상대로 개별화 학습, 완전학습, 전인교육을 온전하게 행하면서,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존경까지 곁들여 있었다. 그러나 요즘의 세태는 어떠한가. 거대 학교, 다인수 학급, 이질 학습 집단, 열악한 시설 등의 악조건에 학부모들의 다양하고 과중한 요구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오늘의 교사, 국가 백년 대계의 중책을 지고 교육 개혁의 착근을 위해 의식 개혁의 채근을 받고 있는 교사는 그 사명감의 무게 만큼이나 고달픈 직업이 분명하다.

한 때 교무실에 흘러 다니던 ‘멀쩡한 사람이 선생질 하더라’고 하는 우수개라기보다 교사로서의 자조적이요, 듣기에 비아냥 이상의 비수 같은 소리는 마지막 남은 한 가닥의 자존심마저 깡그리 쓸어버리기에 충분했다.

교사의 막중한 역할에 걸맞지 않는 처우가 사회 일반의 교사에 대한 폄하 현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교육 정책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그러나, 세상이 나를 보고 무어라 하든, 온라인으로 입금된 봉급액이 은행 창구 아가씨에게 들통날까봐 걱정되어 전전긍긍하는 생활일지라도, 주변머리 없이 곧이곧대로 살 줄 밖에 모르는 나 같은 송충이는 교직의 솔잎을 먹고 살 뿐, 달리 무엇을 넘볼 재목이 못됨을 진작 알기는 했지만, 하도 생활에 시달리다 보면 엉뚱한 생각을 잠깐씩 하게 되었었는가 보다.

오로지 신명을 다해 책무에 충실해야 할 천직임이 분명할진대, 소위 교육자로서의 체통만은 잃지 않겠다고 40여년을 버티어 왔다는 건덕지로 99%의 실패를 얼버무려야 할까 보다.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치지 않는 법이다. 물로 빼를 채우고도 헛기침은 빼지 않는다. 우리 교사들도 체통과 품위가 떨어지면 죽음이 있을 뿐이다.

지나간 99%의 세월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남은 1%의 시간만이라도 주어진 책무에 정성을 쏟아 보리라. 사도 헌장이 나를 채찍질하고, 헨리 벤 다이크의 ‘무명 교사 예찬론’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으로 보면, 나도 아주 큰 스승은 못되어도 작은 스승의 말석에 끼일 만도 한데..... 착각인가?

이제 몸 담아왔던 공직을 내려놓고 제 2의 인생을 출발하려 한다.

오늘의 내가 있게 해주신 선.후배 교육동지들, 친지, 학부모님들의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또 다른 세상에 임하더라도 늘 처음처럼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연홍길/충북 진천교육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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