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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누린내 풀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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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6.27 15:35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충청신문=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말할 수 없이 청량하고 시린 빛깔의 누린내 풀꽃.
 
유난히도 가문 여름을 견디며 벌써 보랏빛 작은 꽃이 피고 있다. 자수정 같이 생긴 동그랗고 작은 꽃망울은 어떤 꽃도 흉내 낼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살짝 스치기만 하여도 무슨 풀인지 금방 알 수 있는 누린내 풀, 풀을 뽑다가 이 녀석 곁에 머물면 손이 저절로 움츠러들면서 숨을 멈추기도 하지만 꽃을 보면 꽃술이 너무도 신기하여 몇 포기 곁에 두고 있는 식물이다. 
 
들깻잎과 비슷한 모양의 줄기에 잎은 양쪽으로 두 장씩 내고 잎겨드랑이에서 꽃줄기를 좌우 대칭으로 한 대씩 올려 그 끝에 진한 보라색의 꽃을 피운다. 
 
카메라의 파인더를 들여다보면 중심부에 원이 그려져 있다. 가만히 그 원의 크기에 꽃을 맞추어 보면 정확한 동그라미 형태로 꽃이 피어 있음을 보게 된다. 
 
참으로 묘한 모습에 눈을 떼기가 힘들다. 특이 하게도 암술과 수술을 하늘 쪽으로 동그랗게 말아서 펼친다. 네 장의 꽃잎을 나비의 날개모양으로 펼치고 한 장은 꽃술이 그리다만 원을 만들기 위하여 둥그렇게 휜다. 꽃술의 모습은 꼭 어사화와 흡사하다. 
 
꽃술이 길게 밖으로 나온 자태가 매우 인상적이어서 한 번 만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순간 누린내가 진동한다. 
 
이렇게 예쁜 꽃을 피우는 식물에서 뭐 요런 냄새가 나는지 모르겠다. 이 아름다운 모습에 끌린 벌레들과 지나가는 길손의 얌체 같은 손길을 피하는 방법으로 독한 냄새를 택하지 않았나 싶다.
 
식물에게도 자신들의 후손을 이어가야 한다는 한결같은 목표가 있나 보다. 아래쪽으로 길게 뻗은 꽃잎은 벌과 나비가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 같다. 
 
여기에 벌이 앉았다. 뭔가를 작업하는 동안 벌의 무게 때문이지 위에 핀 꽃잎이 아래로 향하게 되면서 길게 뻗었던 수술도 끌어 내려오니 꽃가루가 벌의 몸에 묻게 되었다. 
 
꽃가루를 묻힌 벌은 또 다른 꽃으로 옮겨가 꽃가루받이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겠지. 
 
어떤 꽃은 원치 않는 곤충을 오지 못하게 악취를 풍겨 자신을 보호하기도 한다지만 누린내 풀은 꽃에서만은 향기를 내뿜어 벌에게는 꿀을 딸 수 있게 하고 다른 동물에게는 악취를 풍겨 접근을 막는 것 같다. 
 
아름다운 꽃이 필 때에 누린내를 더욱 풍기니 말이다.
 
풀꽃들의 모습과 향기와 빛깔은 참 각양각색이다. 어떤 풀꽃은 고운 꽃과 향기로 관심을 끌고, 가까이 보면 예쁘지 않은 꽃이 있을까마는 누린내 풀꽃처럼 보랏빛에 반해 가까이 하고 싶어도 지독한 냄새 때문에 도저히 가까이 다가 갈 수 없게 만드는 풀꽃도 있다. 
 
아마도 저항이란 자기방어기제가 아닐는지.누린내 풀을 바라보면서 사람의 모습도 제각각, 향기도 각자 다른 향기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내가 품고 지나온 향기는 어땠을까 궁금하지만 참으로 부끄러워진다. 
 
매일 매일 잡초 속에서 폈다지는 들꽃이 좋아서, 이른 아침 산새들이 내려와 사정없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좋아서, 촌부로 살고 있는 나에겐 어떤 향기가 날까. 
 
아이들이 좋아서, 사람들이 좋아 부비고 살면서 어쩌다 나의 분노 섞인 매정한 말투로 그들을 몹시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지 내 뜰 안을 거닐며 깊은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잠시 바람이 일며 누린내 풀냄새가 슬며시 풍겨온다.
 
화려한 보랏빛을 가진 누린내 풀꽃, 꽃술의 정교함과 지독한 향기를 무기처럼 갖고 있는 누린내 풀에게 벌과 나비는 여전히 날아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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