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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궁(離宮) 별궁(別宮) 행궁(行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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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0.02.16 19:03
  • 기자명 By. 충청신문/ 기자
이궁(離宮)은 동궐 창덕궁(昌德宮)이 1405년 조성됐으며 공식 의례와 조회(朝會)를 행하는 정전(正殿) 인정전(仁政殿), 왕이 국정 사무를 보는 편전(便殿) 선정전(宣政殿), 왕의 개인 생활, 침식 공간인 대전(大殿) 희정당(熙政堂), 왕비가 생활하는 중궁전(中宮殿) 대조전(大造殿), 세자가 생활하는 동궁전(東宮殿) 중희당(重熙堂), 세자 학문 강학하는 성정각(誠正閣), 순종황제가 탄생한 관물헌(觀物軒), 세자의 서재 승화루(承華樓), 세자의 사무 공간 시민당(時敏堂), 부속 건물 진수당(進修堂)이 있다.

내전 경훈각(景薰閣), 보경당(寶慶堂), 낙선재(樂善齋), 석복헌(錫福軒), 수강재(壽康齋), 왕의 어진(御眞)봉안하는 선원전(璿源殿), 선원전 재실 양지당(養志堂), 대비전(大妃殿) 만수전(萬壽殿), 부속 건물 영모당(永慕堂), 연회 공간 영화당(暎花棠), 서재 기오헌(寄傲軒), 후원은 태극정(太極亭), 소요정(逍遙亭), 취한정(翠寒亭), 농산정(籠山亭), 취규정(聚奎亭), 부용정(芙蓉亭), 애련정(愛蓮亭), 청심정(淸心亭), 승재정(勝在亭), 존덕정(尊德亭), 관람정(觀纜亭), 농수정(濃繡亭)으로 구성돼 있다.

창경궁(昌慶宮)은 의례 공간인 정전 명정전(明政殿), 국왕 사무 공간 편전 문정전(文政殿), 강학 공간 숭문당(崇文堂), 중궁전 통명전(通明殿), 대비전 자경전(慈慶殿), 세자 강학 공간 신독재(愼獨齋), 빈전 환경전(歡慶殿), 정조가 탄생한 경춘전(景春殿), 통화전(通和殿), 양화당(養和堂), 연희당(延禧堂), 건극당(建極堂), 왕이 직접 농사를 지어보면서 농정을 살피는 내농포(內農圃), 외원(外苑) 함춘원(含春苑)으로 구성돼 있다.

서궐 경희궁(慶熙宮)은 공식 의례, 조회(朝會)를 하는 정전(正殿) 숭정전(崇政殿), 왕이 국정 사무를 보는 편전(便殿) 자정전(資政殿), 왕의 생활하고 침식하는 대전(大殿) 융복전(隆福殿), 왕비가 생활하는 중궁전(中宮殿) 회상전(會祥殿), 내전 집경당(集慶堂), 흥정당(興政堂), 경륜재(經綸齋), 위선당(爲善堂), 상휘당(祥暉堂), 함춘헌(含春軒), 안희합(安喜閤), 지효합(至孝閤), 내전 별실 덕유당(德游堂), 덕유당 부속 공간 사물헌(四勿軒), 내전 하례(賀禮) 공간 광명전(光明殿)이 있었다.

왕의 어진(御眞) 봉안하는 태령전(泰寧殿), 왕의 신위(神位)를 모셔두는 계상당(啓祥堂), 대비전(大妃殿) 장락전(長樂殿), 대비전 부속 건물 봉상루(鳳翔樓), 용비루(龍飛樓), 대비전 별당 어조당(魚藻堂)과 동궁전 내당(內堂) 즙희당(緝熙堂), 양덕당(養德堂), 동궁전 부속 건물 중서헌(重書軒), 동궁전 별당 경선당(慶善堂), 세자 사무 공간 경현당(景賢堂), 세자 서재 문헌각(文獻閣), 세자 강학하는 존현각(尊賢閣), 혼천의(渾天儀) 설치한 규정각(揆政閣), 휴식 공간 청한정(淸閒亭), 춘화정(春和亭)이 있었다.

회의공간인 빈청(賓廳), 대청(臺廳), 어명 전달, 관보 발행하는 승정원(承政院), 국정 자문, 간쟁하는 홍문관(弘文館), 외교문서를 관장하던 승문원(承文院), 문서 제술, 사초 기록하는 예문관(藝文館), 임금의 의복과 궁내의 재화(財貨)·금·보화 등을 관리하는 상의원 (尙衣院), 내시를 관리하는 내반원(內班阮), 왕실에 필요한 약을 조제하고 치료하는 내의원(內醫院), 궁궐 숙위(宿衛)를 담당한 도총부(都摠府) 등 궐내각사가 있었다.

1615년 광해군(光海君)이 창덕궁(昌德宮)으로 이어(移御)한 이후 창경궁(昌慶宮)의 중건이 진행되고 있는데 풍수승(風水僧) 성지(性智)에 의해 인왕산(仁王山) 왕기설(王氣說)이 제기돼 광해군은 인왕산의 왕기를 누르기 위해 1616년 인왕산 아래에 인경궁(仁慶宮)을 창건했다. 필운동에 있었던 인경궁은 경희궁의 영건과 병행돼 재정적 어려움이 가중됐지만 광해군은 공사를 강행했다. 인조 10년 인목대비가 인경궁 흠명전(欽明殿)에서 서거했으며 인조 26년 인경궁의 재와(材瓦)로 홍제원(弘濟院)을 지었다.

별궁(別宮)은 선왕(先王)의 후궁(後宮)들이 거처하는 자수궁(慈壽宮)은 옥인동에 있었으며 안동별궁(安洞別宮)은 흥선대원군이 고종의 비(妃)인 명성왕후를 맞아들이기 위해 신축한 별궁(別宮)으로 안국동에 있었고 창의궁(彰義宮)은 영조의 잠저(潛邸)로 통의동에 있었으며 숙종 45년 경의군(敬義君)이 탄생한 곳으로 궁 안 장보각(藏譜閣)에 영조의 영정을 봉안했다. 예종(睿宗)의 아들 제안대군(齊安大君)의 사저 수진궁(壽進宮)과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의 용동궁(龍洞宮)은 수송동에 있었다.

장의동본궁(壯義洞本宮)은 태종, 세종의 잠저(潛邸)로 청운동에 있었으며 어의궁(於義宮)은 사직동에 있던 궁으로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곳이다. 용흥궁(龍興宮)은 효제동에 있던 효종의 잠저였으며 인조·현종·숙종·영조·순조 대에 걸쳐 왕후의 가례(嘉禮)가 거행됐다. 이현궁(梨峴宮)은 인의동에 있던 광해군의 잠저이며 운현궁(雲峴宮)은 고종의 잠저이며 흥선대원군의 저택이었다.

행궁(行宮)은 조선 초 조성된 풍양궁(豊壤宮), 온양행궁, 초수행궁, 이천행궁이 있고 인조, 숙종은 남한행궁, 북한행궁, 강화행궁, 전주행궁, 격포행궁, 월미행궁을 조성했으며, 정조가 화성행궁과 노량행궁, 시흥행궁, 과천행궁, 사근참행궁, 안양행궁, 안산행궁을 조성했다. 정조가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능행길에 들른 시흥행궁(始興行宮), 화성행궁(華城行宮), 내란과 외침에 대비한 남한행궁, 북한행궁, 강화행궁, 전주행궁, 월미행궁, 격포행궁, 휴양(休養)목적의 온양행궁, 초수행궁, 이천행궁이 있었다.

김민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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