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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박상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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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1.30 17:0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박상희 피아니스트

브람스 작품으로 이루어진 연주회에 초대해야 할 때에는 혹시나 싶어서 조심스럽게 묻게 된다. ‘쇼팽을 좋아하세요?’라든지 ‘모차르트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이것은 마치 소믈리에가 손님의 취향을 알기위해 간단히 던져보는 질문들에는 없을 것 같은, 그래서 묻게 되는 질문이다. 조금은 상대를 알아야 권할 수 있을 것 같은 질문, 그 사람과 정말 음악으로서 교감을 하고 싶을 때에 할 수 있을 것 같은 질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의 음악은 대체로 무겁다. 들어서 기분이 쉽게 좋아진다거나, 고요한 명상에 빠지게 한다거나, 아니면 화려함으로 말초신경을 자극한다거나 하지 않다. 처음 접하는 브람스는 투박하고 겉멋도 들지 않은 어느 나무 의자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우직하게 박혀있는 다리와 세세한 결로 이루어진 면을 시각이 아닌 촉각으로 옮겨와 느끼게 되는 그 순간에 펼쳐지는 스토리가 주는 감동이 있다고 할까. 오래 보고, 듣고, 만지면서 얻는 희열을 주는 작곡가가 브람스가 아닌가 한다.

브람스의 작품들을 들으면, 당대의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스승이었던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였던 클라라 슈만에 대한 연정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로베르트 슈만이 정신 병동에 입원을 하게 되어 어려워진 은사의 가족들을 자주 도와주는 마음에서 슈만의 집에 머무르며 가족같이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클라라 슈만의 이상적인 여인의 모습과 음악가로서의 존경심으로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는 끝없이 그 마음을 절제하며 평생을 주변에서 맴돌게 된다.

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은 겉으로 드러나는 주제부와 그 안에 겹겹이 쌓여있는 성부들 간의 울림이 상충하는 듯 어우러진다. 안에서 내밀하게 말하고 있는 성부들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한 순간에도 만 가지 마음이 교차했을 그의 심정이 들리는 듯하다. 밖과 안에서 울리던 성부들이 합일을 이루는 순간을 그려낼 때의 그 웅장함은 다른 화려함이 주는 감동보다 더욱 배가 되고, 가슴 깊은 곳을 어루만지는 울림을 선사하며, 고조가 지나고 해결이 이루어지는 부분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묵직한 따뜻함을 느낀다.

브람스에게 음악의 동력은 아마 사랑에 대한 고통이 아니었을까. 평생에 걸쳐 이루지 못한 사랑의 허상은 브람스에게로 하여금 끝없는 불안과 갈망, 두려움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이성복 시인의 '프루스트와 지드에서의 사랑에 대한 환상'이라는 책에 따르면, 사랑의 대상을 향한 불안과 두려움은 사랑 자체를 가능케 하는 힘이자, 사랑의 지속 또한 그 불안에 의해 가능하다고 했다. 그의 작품에 끝없이 나타나는 격정적이고도 온화한 패시지들은 무엇으로 설명이 가능하겠는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작품을 읽어보면 아마도 브람스와 클라라의 심리를 더욱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폴에게 시몽이 던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폴의 심경을 요란하게 움직이게 하고, 당시 관성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폴과 그의 애인 로제에 대한 새로운 물음을 준다. 지난한 관계의 모든 것을 뒤엎을 만한. 그저 입으로 내뱉고 있는 말들의 말 뿐인 것들에 대해. 다시 말해, 사랑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고 있는 것들에 대해 무형의 사랑에 대한 현실적인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결론 역시 브람스와 닮아있다.

당대의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영감과 화성에 의존한 새로운 소리에 현혹되어 있을 때에도 그는 진지한 고찰을 멈추지 않고, 단순한 감정의 열거보다는 하나의 감정이라도 완성된 형태로 끌어내고자 했다. 그의 그러한 노력이 고전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나에게 브람스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가슴에 깊이 아로새겨지는 감동이 있으므로.

2017년은 브람스 서거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인지 곳곳에서 브람스를 주제로 한 다양한 연주회들이 눈에 많이 띈다. 브람스에 대한 지극히 단편적인 이야기이지만, 이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는 그의 작품을 찾는 동기가, 누군가에게는 연주회를 찾게 되는 호기심으로 읽혀지기를 바라며, 그의 삶을 응축한 듯한 작품, 브람스 교향곡 3번의 3악장을 추천한다.

박상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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