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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초심불망(初心不忘)

한기연 시인·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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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2.25 16:38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한기연 시인·평생교육강사
아침부터 내리는 겨울비가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린다. 온기 가득한 거실과 달리 밖은 낮인데도 회색빛으로 가라앉아 있다. 무심코 바라본 달력은 12월의 마지막을 며칠 남겨 두고 있다. 누군가 세월은 나이대로 속도를 내며 간다더니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며칠 전부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몇 년 전부터 한 해가 끝나가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1~2월이 가장 스트레스 받는 달이 되었다. 장기간의 여행도 꺼려질 만큼 중요한 시기이다. 
 
방과 후 교육의 초창기인 1998년부터 초등학교에서 강사로 활동을 하고 있다. 해마다 계약은 새롭게 하고 있었지만 재계약은 순조롭게 이어져 왔다. 그러나 2014년부터 공고를 통해 지원자를 모집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끊임없이 배우고 최선을 다해 교육의 일부분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원제도의 변화는 긴장감을 초래했다. 공고를 통한 지원자 경쟁 중 가장 큰 아픔을 겪기도 했다. 
 
지금은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지 않지만,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지원자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 내게서 배운 제자가 경쟁자로 지원했을 때 우리의 관계를 알고 있던 학교 관계자도 ‘제자가 스승을 넘본다’며 의아해했다. 경쟁에서 내가 선택을 받기는 했지만, 배신감이 들기도 하고 오랫동안 힘든 갈등의 시간을 보냈다.
 
1차 서류를 제출하고 2차 운영능력을 평가하는 면접을 보게 되는데, 면접장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선생님과 어색하게 마주치기도 하였다. 그 때는 학교에서 원하는 능력이 내가 아님을 면접을 통해 직감하게 되었고, 불합격되었지만 패배를 쉽게 인정할 수 있었다. 
 
올해는 지난주부터 학교마다 내년도 강사 모집 공고가 시작되었다. 매년 공고를 통한 강사 지원에 우수한 능력의 지원자가 늘고 있다. 취업난의 세태를 반영하듯 몰리는 경쟁구도를 겪으면서 불안정한 직업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기도 한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보장도 없다. 그러나 아직은 이 일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즐겁기에 최선의 나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재계약이 결정되는 이 시기가 가장 신경 쓰이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오랫동안 해온 경험을 내세워 자만심에 빠지지 않도록 겸허한 마음 자세를 다잡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난 1년 동안을 반추해 본다. 
 
수업 중 함께 했던 아이들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짜증내고 화냈던 순간을 반성하기도 한다. 또한 교육적으로 미흡했던 부분을 되짚어보면 좀 더 열심히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내년에는 좀 더 체계적으로 지도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하고, 욕심을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기다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새롭게 서류를 준비하면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살아 온 흔적을 본다. 평소 지론이 ‘준비하는 자만이 기회를 얻는다’인데 쉼 없이 연마했기에 전문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멈추지 않고 자기계발을 꾸준히 한 것은 다행이다. 
 
그런데 가끔은 나의 경력과 능력을 타인에게 과시하듯 내보일 때가 있다. 가장 위험한 경고의 순간에 제어능력을 발휘해 심호흡을 고르게 하는 고마운 순간이 재계약 기간이다. 처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을 때의 마음가짐으로 돌아서게 한다. 긍정과 부정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고 있음을 새롭게 느낀다.
 
하루종일 비가 내린다. 빗물이 흐르는 유리창으로 내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지금처럼 노련미와 능력은 부족하지만 열정적으로 가르치던 젊은 날의 모습과 마주한다.
 
한기연 시인·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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