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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차 한 잔을 놓고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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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2.26 16:04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학교후배가 핸드폰 메시지로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왔다. 빨간 봉투를 클릭하니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글씨가 튀어나온다. 핸드폰으로 보내는 인사 메시지들을 너무 많이 받다 보니 공해 같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그래서 보내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그렇다고 손 편지 카드도 보내지 않는 모순되고, 무심한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올해가 가기 전에 서운한 사람들과 얼굴이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에 지인 몇 분과 오붓하게 차 한 잔을 마셨다. 오늘은 커피 대신 유자차를 주문했다. 한 해의 마무리를 하려고 하니 자꾸 부모님과 고향 생각이 많이 난다. 
 
유자는 내 유년 기억의 바다에 언제나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는 추억 어린 과일이다. 유자에 대한 추억은 몇 시간을 이야기해도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고향에서 유자는 귀한 과일이었다. 그래서 가을에 시제를 지낼 때는 꼭 올리는 과일 중 하나다. 시제를 모시고 거나하게 취하여 돌아오신 아버지 주머니 속에서 나온 유자 한 개는 아주 특별한 선물이었다.
 
유자는 썩 맛있는 과일은 아니다. 귤처럼 달지도 않고 사과처럼 은근히 끌리는 신 맛도 아니다. 과일의 대부분을 차지한 유자알맹이는 신맛이 강하다. 어지간히 신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먹지를 못했고 껍질만을 벗겨 먹었다. 
 
요즘은 알맹이와 껍질을 함께 설탕에 재어 그 청이 유자차가 되지만 내 기억으로는 주로 말려서 배가 아플 때 면 할머니가 달여주신 그 물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알지도 못하고 먹었지만 유자에는 비타민과 구연산 등 풍부한 영양소가 들어 있다. 지금은 특히 겨울철에 각광 받는 차가 되었다.
 
유자가 귀한 과일로 사랑 받았던 것은 향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할머니가 자주 하시는 말씀 중에 “탱자는 고와도 상놈 손에서 놀고 유자는 얽어도 양반 손에서 논다”고 하셨다. 그 말의 의미는 설명하지 않아도 이제는 안다. 겉모양이 매끄럽고 예쁜 탱자는 쓸데가 별로 없을뿐더러 향도 없지만 곰보 유자는 쓰임도 다양하고 그 향이 일품이라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뜻 아니겠는가? 
 
우리네 세상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향기 나는 사람을 만나기는 싶지 않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면 오래오래 여운이 남는다. 언젠가 아는 분과 나이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 “넌 아직 아니야. 통통 튀어서 좋아” 하던 말이 갑자기 생각난다. 아직 풋과일이라는 뜻일 것이다. 한참을 더 농익어야 깊은 향기가 우러난다는 뜻의 해석도 가능하리라. 
 
이제 나도 50의 중반을 막 들어선다. 내년에는 내 나이에 걸 맞는 여유로움과 포용력으로 유자 같은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 하나를 더해본다.
 
향긋한 유자 향과 달콤한 맛에 취했다. 창 밖에는 겨울비가 내내 내리고 있었다. 편한 사람들과 향기 있는 유자차와 창밖의 비까지 이 소소한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이 소중한 일상의 담보는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2017년 마지막 주에 들어섰다. 크리스마스와 년 말을 맞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충북은 차분하게 보내고 있다. 지난주 목요일에 일어났던 제천 화재 사건으로 모이기만 하면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에게 얽힌 사연들을 이야기하며 안타까워한다. 막혀있는 비상구로 인해 29명의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오늘도 매스컴에서는 화재의 원인부터 시작해 예방대책까지 메인 뉴스로 다루고 있다. 가까운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라 더더욱 가슴 아프다. 좁은 지역사회에서 모두가 형이고 동생이며 누나였을 제천은 깊은 슬픔에 잠겨 있을 것이다. 이번 화재 사건의 정확한 원인을 찾고 대책을 논의해서 다시는 인재로 인한 슬픈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본다.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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