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아침을 열며] 내 아내, 내 동생, 내 딸이라면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8.03.25 16:0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한국인들은 명언이나 명구를 참으로 좋아한다. 그래서 마음에 새겨둘만한 좋은 글귀를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다. 많은 교양서적은 장(章)이나 꼭지가 바뀔 때마다 유명인들의 어록을 하나씩 소개하곤 한다. 화장실 변기 앞에 명언이 붙어있기도 하다. 명언은 읽는 순간 잠시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게 하고 새로운 생각을 갖게 하는 작은 충격을 안긴다. 어쩌면 그리도 적절한 말을 했을까 싶어 자신의 삶에 비추어보게 한다. 그래서 잠시라도 삶을 반성하거나 마음을 정화하게 한다. 명언의 역할은 바로 그런 것이다. 한 구절의 명언이 자신이 처한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질 경우, 깊이 새기게 돼 삶의 가치관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새 출발의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

책장 사이사이, 화장실 변기 칸칸마다 명언을 접하지만 그보다 강한 인상을 주는 명언은 대개의 가정이나 사무실, 연구실 등에 액자나 족자 형태로 걸려 있는 한자성어이다. 대개 유교경전에서 따온 문구 또는 중국고사에서 유래한 사자성어가 많다. 다양한 글귀가 많지만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고진감래(苦盡甘來)’ ‘형설지공(螢雪之功)’ ‘경천애인(敬天愛人)’ ‘홍익인간(弘益人間)’ 등이 인기가 가장 많은 문구가 아닐까 싶다. 이들 문구에 못지않게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문구가 ‘역지사지(易地思之)’이다. 어떤 일을 행할 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는 의미의 ‘역지사지’는 최고의 인기문구 중 하나이다.

‘역지사지’는 글자도 크게 어렵지 않고 내용도 쉬워 누구나 잘 알 수 있지만 뜻은 참으로 심오하고 강렬하다. 어떤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직전에 한 번 곱씹어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보게 하는 문구이다. ‘역지사지’의 마음이 보편화 되면 세상은 참으로 평화로워질 것이며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딜 가도 ‘역지사지’라는 문구가 적힌 액자나 족자를 쉽게 목격하게 된다. ‘역지사지’란 문구는 가정이나 학교나, 직장이나 어디서든 통용될 수 있는 내용이고 누구에게도 거부감이 없다. 누구라도 ‘역지사지’란 말을 싫어할 이유가 없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여비서 성폭행 사건이 전국을 들썩이게 했다. 실로 메가톤급 위력을 과시한 엄청난 뉴스였다. 각 언론매체마다 안희정 사건으로 도배질을 했고, 둘 이상의 사람이 모이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안희정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듣기만 해도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내용이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다. TV 뉴스를 보고 신문 기사를 보는 동안 계속해서 머릿속에 ‘역지사지’란 말이 떠올랐다. 그가 육욕에 휘말렸던 순간에 입장 바꿔 생각하는 과정을 겪었더라면 이런 엄청난 사건은 피해갈 수 있었을 텐데 싶은 아쉬움이 가시지 않았다.

내 아내가, 여동생이, 딸이 같은 피해를 당하고 왔다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했어야 한다. 또는 직접적으로 내가 피해 여성이었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를 생각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역지사지’의 사고이다. 가해자인 그가 ‘역지사지’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기고 한 번만 더 신중하게 행동했더라면 이 같은 엄청난 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고가 처음 벌어진 그 순간에 ‘역지사지’를 생각하고 행동을 달리 했다면 피해자가 평생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할 충격과 분노를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우매하기 때문에 가끔은 충동에 의해 이성이 마비되는 상황을 맞는다. 그 순간의 고비를 넘기는 것은 오로지 이성을 회복하는 능력이다. 위기의 상황에 이성적 판단을 하기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평소 마음속에 새겨둔 명언명구를 떠올리는 것이다. 안희정 그가 평소 ‘역지사지’를 마음에 새기고 살았다면 참담한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자신에게 짓밟힌 여성의 처지가 내 아내, 내 여동생, 내 딸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더라면 이처럼 비참한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