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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가족 결혼식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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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3.26 16:11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열 달 정도 시간이 있는데, 예식장이 만원이란다. 결혼 날짜를 정하고 한두 달 안에 예식장을 잡는 것이 불가능하단다. 이곳저곳 알아보니 어중간한 시간밖에 없단다. 그것도 단 한 타임뿐이라나. 어이가 없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결혼하는데 출산율은 저조하고 점점 아이들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친구가 예식장 사업을 한다. 연락도 하지 않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예식 할 시간에 장소가 남아 있나 알아봤더니 다행히 멀리 잡은 날에는 예식 할 수 있단다. 아이들에게 가서 계약하라 하고 한숨을 돌렸다.

부산스럽다. 며칠 전부터 이것저것 챙기고 혹시나 잊은 게 없나 다시 확인하기를 수십 번 한다. 트렁크와 승용차 안까지 채우는 것으로 준비를 마쳤다.

딸의 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이럴 땐 기분이 설레어야 하는데 아무런 감정이 나지 않는 내 자신이 불만스럽다. 안 좋아도 좋은 척해야 하는데 그럴 기분이 나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미련이 남아서일까. 마음을 비우자 하고 겉으론 아닌 척 했는데 마음에선 받아드리지 않나 보다.

새로운 가족으로 탄생되는 날이다. 격식을 과감히 없애고 편안하게 양가 가족이 함께 하기로 했다. 두 번째 만남이니 내 성격은 어느 정도 파악했을 것이고 그들의 성격도 이미 파악 되었고 아이들이 중간에서 역할을 잘 했으니 부담은 적었다.

나는 숙제가 있으면 바로 해야 하는 성격이다. 일단 결정하면 직진해서 일을 해결하는 편이다. 출산을 고려해서 가을까지 가기 전에 가족끼리 결혼식을 하자고 했을 때 사돈 내외는 흔쾌히 그러자 했다. 딸도 사위도 내 성격을 알기에 군말 없이 수긍했다. 독단적인 내 결정이었음에 동조해 준 그들에게 감사했다.

딸은 출근해서 없고 사위가 우리를 맞는다. 조금 일찍 도착했으니 음식을 준비할 시간은 넉넉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사위가 갈비찜과 미역국을 끓여 놓은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제법 간도 잘 맞추었고 맛도 있었다. 딸은 음식을 못한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할 줄 아니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 결혼식. 양가 가족들이 모여 서로를 인정하는 조촐한 결혼식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없는 솜씨로 이것저것 만들고 나니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식당으로 가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시간도 여유롭지 않고 이야기 나누기에도 불편할 것 같아 직접 음식을 만들었다.

케이크를 마지막으로 준비를 마쳤다.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조화를 이뤄나가는 것이니 아이들이 서로를 배려하며 예쁘게 잘 살길 기도한다. 결혼 잔치라는 미명 아래 술이 한 순배 돌았다. 술이란 묘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느긋하게 하고 어색함을 상쇄시키는 기능이 있다. 전생을 돌아 만난 인연의 끈이 바로. 지금. 우리들이라 생각한다.

이것으로 간단하게 결혼식을 마치고 싶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다 보니 형제들은 제대로 된 결혼식을 하길 기대한다. 허례허식일지라도 어쩔 수 없다. 딸의 결혼이 늦다고 안타까워하던 시누이는 결혼한다는 소식만으로도 기뻐했다. 양쪽 형제들이 많다보니 결혼은 간단 할 수가 없다. 이럴 땐 외국의 결혼 문화가 부럽기도 하다.

웃고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덧 자정이 다 되어간다. 헤어짐이 아쉽다. 자식을 공유한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다. 아직은 서먹한 구석도 있고 조심할 부분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진정한 가족이 되면 사라지겠지.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대외적인 결혼식만 하면 된다. 예단 주고받지 말기, 꼭 필요한 것만 준비하기로 결정하고 가을에 결혼식만 올리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예전의 나는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으려고 했다. 딸 가진 엄마가 준비하는 것을 즐기려 했는데….

세상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지만, 자식은 정말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 부풀었던 꿈은 사라졌지만, 한 번 더 애들에게 또 다른 꿈을 꿔 본다.

딸에게 전화가 온다. “엄마 수고 많았어요.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애들에게 기대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반박하고 싶다. 내가 이 세상과 인연을 다할 때까지 딸은 매일 전화하며 나를 챙겨줄 것이라고.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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