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충청포럼] 사라진 배경 음악

박상희 피아니스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8.03.29 16:45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박상희 피아니스트

친구들과 오랜만에 모임을 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바쁘게 사느라 얼굴 볼 새가 없어 의무적으로라도 만나려고 노력한다. 점점 친구가 귀해지는 요즘이다. 간만의 기회를 누리기 위해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갔다.

그리고 외관이 예쁘게 꾸며진 카페를 골랐다. 화분과 쿠션, 그리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재미나다. 그러다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 모두 다.

카페 안에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피아노 연주곡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는데, 건조한 잔향을 가진 어색한 소리였다. 그 음색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댕댕도 아니고 땡땡도 아닌 피아노 소리를 흉내 낸 듯한 소리와 아주 성실하게 표현되고 있던 리듬. 바람이 각을 잡고 부는 느낌이랄까. 단번에 전자피아노 연주곡임을 알아챘다. 모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괴로워하면서도 동시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유, 이런, 누가 피아니스트들 아니랄까 봐.

어쿠스틱 음악을 전자 악기로 연주한 음악은 피로감을 줄 때가 있다. 자연스러운 잔향이 없기 때문에, 어떤 음을 들어도 소리의 맺음이 일괄적이다. 악기가 기술 발전으로 보완됐다고 해도, 어쿠스틱 악기의 소리를 재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그 울림을 다루는 연주자에게는 당혹감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어색하고, 이상하게 들린다. 귀가 예민한 사람이라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카페 주인에게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얻어 명곡집을 간신히 쳐낸 듯한 그 음반을 바꾸었다. 그런 뒤에야 대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멀리서 온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식당에 들어갔다. 활기차고 북적대는 것이 에너지가 넘친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밀린 대화를 푼다. 옛날 가요들이 나온다. 대화 주제는 음악을 타고 그 시절 그 때의 노래들로 한참 추억을 쏟아낸다.

그런데 이상하다. 음악은 계속 바뀌는데 가수는 그대로이다. 처음에는 리메이크 음반인가보다 하고 들었는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곡의 노래를 남자 가수, 여자 가수가 번갈아 가며 계속 부른다. 이 음반의 정체는 무엇이고, 이 가수들은 누군지, 왜 오리지널 음악을 굳이 피하는지 궁금했다.

대형 마트에는 무한 반복으로 광고 노래가 나온다. 물건을 사러 들어갔다가 광고 노래에 세뇌가 되어버린다.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것이 목적인지라 가볍고 단순한 짧은 반복이 주를 이룬다. 이것은 음악이 아니다. 뛰쳐나오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다스린다.

쇼핑하는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라기보다는 오로지 안내와 홍보뿐이다. 동네 슈퍼면 모를까 그 거대한 공간을 소비하는 고객에게 음악다운 음악 좀 들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시간이 참으로 값질 텐데. 매일같이 듣고 있을 판매자분들의 인내심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길을 걷다가, 아니면 우연히 들른 가게에서 심심찮게 만났던 새로운 음악들. 혹은 반가운 음악들. 그래서 그 시간이나 장소가 특별하게 기억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거리를 돌아다니면 자연스레 가장 유행하는 음악을 절로 알게 되었던.

하지만 요즘은 음원 사이트나 다운로드 수로 그 지표를 삼는다. 이제는 일상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거리를 찾기 힘들어졌고, 새로운 음악에 ‘이끌리는’ 경험도 적어진 듯하다. 예전과 달리 크리스마스에도 조용한 거리가 기사로 실렸던 것이 기억이 난다. 가게 주인의 개성을 담은 음악이 좋은 장소를 찾기도 많이 힘들어졌다.

이러한 현상들의 배경에는 저작권이 한몫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불법으로 사용되는 음원을 근절하고자 권리를 보호하자는 것인데, 오히려 음악에 대한 소비를 줄이고 광고나 홍보 혹은 커버 음반이 활보하는 모양새다.

대신에 저작권을 교묘하게 피한 앨범이나 개인이 어설프게 연주한 곡을 무한 반복으로 틀어주는 것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음악에 대한 투자는 그들이 자유롭게 선택을 해야 하는 문제이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적절한 투자 없이 음악에 대한 역할을 쉽게 간과하고 수가 얕은 대체물을 찾고 있다는 게 참 아쉽다.

시간이나 장소를 기억하는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음악으로 기억하는 경우도 꽤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장소의 품위를 규정짓는 마지막 조건도 음악이지 않을까 싶다. 공간을 위한 음악에 조금 더 신경을 쓰면 어떨까. 단순히 지출을 줄여야 하는 어떤 항목에서 음악이 우선순위가 되지 않길 바란다.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자멘도(Jamendo)나 유튜브 오디오 라이브러리 등 저작권을 오픈한 곳에서도 음악을 자유롭게 접할 수 있다. 눈에 띄게 사라진 배경음악이 아쉽다. 짧은 순간이라도 좋은 음악과 함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일상이 되었으면 한다.

박상희 피아니스트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