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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서 8년째 깻잎 농사… 북한이탈주민 원정근·김영숙씨 부부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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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6.19 15:24
  • 기자명 By. 최영배 기자
▲ 사진은 군서면에서 깻잎 농사를 짓고 있는 원정근·김영숙 씨 부부
[충청신문=옥천] 최영배 기자 = 남북 정상회담과 70년 만에 처음 열린 북미 정상회담으로 남북평화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지난 2003년 탈북해 제법 성공한 깻잎 농사꾼으로 성장하며 부농의 꿈을 일구고 있는 부부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옥천군 군서면에서 8년째 깻잎 농사를 지으며 현재는 북한이탈주민의 안정적인 정착을 돕는 선생님 역할을 거뜬히 해내고 있는 원정근(62)·김영숙(59)씨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탈북자인 이 부부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인 남편 원 씨는 김일성정치종합대학을 졸업한 나름 엘리트 출신이다.

30여년간 사병과 장교로 근무하며 집안에서 쓰는 생필품, 먹는 음식까지 나라에서 지원받으며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 생활을 누렸다.

하지만 일명 백두산 줄기라 불리는 항일투사 후손들 때문에 매번 승진이 밀리는데다, 증조할아버지가 소작인을 부리던 자작농이었다는 출신 성분 때문에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지 못하고 이내 제대를 했다.

이후 녹록지ㅣ 않은 생활 형편으로 아내와 두 딸과 함께 하루하루 고되고 힘든 생활을 이어오던 중 이곳에서 더 이상 희망은 없다는 생각에 탈북을 결심했다.

먼저, 가장 가까운 중국으로 가려면 250m되는 압록강을 맨몸으로 헤엄쳐 건너야만 했다. 장교 출신으로 수영 하나는 자신 있던 원 씨와는 달리 전혀 헤엄을 치지 못하는 아내와 두 딸에게는 그야말로 목숨을 내건 사투를 벌여야 하는 멀고도 힘든 길이었다.

먼저 원 씨는 길이 1m짜리 커다란 비닐에 바람을 불어 넣어 물에서 뜰 수 있는 공기주머니를 만들었다. 이 주머니를 아내와 딸들의 몸에 묶어 강을 건너면 물은 먹을지언정 가라앉아 죽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가족과 자신의 몸을 연결하는 끈과 가족을 뜨게 해주는 공기주머니는 이 세상에서 원 씨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생명선과도 같았다.

먼저 아내를 데리고 압록강을 건넜다. 다시 북한으로 돌아와 나머지 두 딸들을 데리고 깊고 긴 압록강을 헤엄치며 암흑 속 물길에서 사투를 벌이길 몇 시간.2003년 8월, 드디어 낯선 중국 땅에서 네 식구가 무사히 만났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 없이 오로지 넷이 헤쳐 나가야 하는 험난한 고생이 시작됐지만, 북한에서 굶어 죽는 것 보단 나았다.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힘겹게 살아오던 중 다행히도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과 연결돼 탈북 2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도착하자마자 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기관인 하나원 생활을 마치고, 주유소·골프장·제과점 등에서 밤낮없이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바쁜 일용직 생활.여기에 머물며 적응하기엔 꿈도 희망도 컸던 원 씨 부부는 우연히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의 영농교육 프로그램을 접하게 됐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강원도와 경남, 전남 등지를 돌며 영농 준비를 했다.

그러던 중 연간 수확이 가능해 내 몸만 부지런히 하면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깻잎에 관심이 갔고, 직접 팔품을 팔며 전국을 돌아다니던 중 깻잎 산지로 유명한 옥천군 군서면에 정착한 게 2011년 6월. 밤잠을 설치며 공부했고, 주위 선배들이 귀찮다할 만큼 자주 찾아가 궁금한 걸 물어봤다.

오로지 가족의 행복만을 생각하며 밤낮없이 농사지은 지 7년이란 세월.지금은 3000여㎡ 크기의 하우스에서 연간 90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릴 만큼 나름 부농이 됐다.

얼마 전 결혼한 큰 딸과 사위, 아내와 함께 일본 여행도 다녀올 만큼 여유도 생겼다.

탈북 관련 단체에서 귀농을 꿈꾸는 다른 탈북자들에게 모범사례로 소개되며 지난해는 통일부장관이 원 씨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현재 군서면에는 원 씨를 모델삼아 귀농한 북한이탈주민이 9가구가 더 있다. 그 중 7가구는 한창 깻잎 농사 재미에 푹 빠져 사는 행복한 농사꾼으로, 나머지 2가구는 설렘 가득한 초보 농사꾼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원 씨는 “이곳 군서면에 정착한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성공한 귀농인이라고 주위에서 말해주니 나름 보람은 있다”며 “하지만 여기까지 오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후배 이탈주민들이 농사를 배우고 싶다고 많이 찾아오고 있지만 단순히 생각할 수 없는 게 농촌생활”이라며 “후배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노하우들을 전달해 성공적인 정착을 돕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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