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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어무이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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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6.25 16:2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아침에 집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빌딩숲 속에 호텔 같은 건물이 나타났다. 안내데스크에서 그녀를 찾으니 전화를 걸어준다. 미로 같은 곳을 헤매다가 결국 청소하는 분의 도움을 받아 겨우 그녀에게 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목을 빼고 기다리는 그녀를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삼십 년 정도 된 것 같다. 포항의 사찰에서 총무를 맡고 있을 때였다. 강한 인상과 힘이 가득 들어있는 말에서 대쪽 같은 성품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모든 면에서 누구도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가 풍기는 그런 분이었다.

공부하는 스님들에게 공양을 하러 다니자는 취지에서 모임을 만들었다. 포항의 작은 암자에 적을 두고 그녀는 신도회장과 모임의 회장을 맡고 나는 총무를 맡았다. 내 성격이 강한데도 둘의 궁합은 환상이었다, 불자로서 같은 길을 걷기도 했지만, 올곧은 성격 또한 닮아서 일까 생각이 잘 맞았던 것 같다.

포항에서 울산으로 이사하면서 모든 것에서 손을 놓고 헤어졌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모습은 가까이 살던 딸을 멀리 보내는 마음이었는지 눈물까지 보이며 서운해 했다. 전생의 인연이 지중했을까. 자주 전화로 안부를 묻고 가끔은 포항을 찾았다. 둘이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을 본 도우미 아주머니가 사이좋은 모녀 같다고 했을 정도다.

다시 충청도로 이사하면서 자주 찾아뵌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가끔 전화로 안부만 물을 뿐이었다. 전화할 때마다 보고 싶다는 말에 모든 일에서 손을 쉬고 내려갔다. 회장님이란 호칭이 입에 붙어 그렇게 부르면 내가 무슨 기업하는 사람이라며 그냥 엄마라고 부르면 안 되겠냐고 했다. 그때부터 어무이로 호칭을 바꾸었다.

그렇게 맺은 인연인데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고 전화하는 횟수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올해로 90살이 된 어무이는 아직도 총기가 대단하다. 내가 저 나이가 됐을 때 저처럼 총기가 있을까. 건강이야 예전만 못하지만 대쪽 같은 성격은 변함이 없다.

보통사람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멋진 실버하우스에 가신 것은 작년 8월이다. 미혼인 아들은 사업으로 바쁘고 도우미 없이는 식사조차 힘들어서 결정했단다. 좀 더 편안하게 사시라고 자식들이 마련해 준 곳이다. 건강하게 운동하고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곳이다.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고 해도 내 집만 못한가 보다. 이곳에 온 후로 정신적으로 많이 아파서 매일 병원에 다녔다고 했다. 아마도 평생 대궐 같은 집에 살면서 지금의 생활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무도 옮겨 심고 뿌리를 내리려면 시간이 필요하듯 어무이도 이곳에 정착하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냈나 보다. 하소연이 길어진다.

수억대의 임대료에 수백의 생활비가 든다고 한다. 자식들이 번갈아 와서 자고 간다고 하면서 효자자식이라고 입에 침이 마른다. 물론 외관상으로는 부족한 게 하나도 없어 보인다. 노년에 돈 있는 분들이 많이 와서 산다면서 말씀하시는 것이 이제는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요즘은 맞벌이로 사는 자식들이 많고 세상이다. 옛날처럼 대가족도 아니다 보니 모시기 힘들다. 게다가 운신하기 어려운 어른을 모시기란 쉽지가 않다. 나라에서 이런 제도를 만든 것은 정말 잘 한 정책이라는 생각이다. 나도 언젠가는 요양시설을 이용할 것이다. 슬프지만 부정할 수는 없는 현실이다.

남편이 어무이한테 우리 집으로 가자고 한다. 며칠만이라도 시골에서 지내시다가 오자고 하는데 이제 움직이는 것도 힘들다면 싫다고 한다. 그러더니 “내가 가서 느그 집에서 산다고 하면 어떻게 할래”한다. 그러면 그냥 우리 집에서 같이 살자고 했더니 차 타는 것도 힘들다며 그냥 있겠단다.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과 또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닐까 싶다.

아들과 딸이 잘 사는데 왜 함께 살면 안 되는 걸까. 평생을 자식들의 위해 기도를 놓지 않은 어머니인데 함께 살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90살 어른이 편리한 것만 좋아할까.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고 하지만 자식들과 함께 비비고 살고 싶지 않을까. 어무이를 보고 있자니 안타깝고 쓸쓸한 마음이 든다.

저녁 때가 되어 일어서니 자고 가란다. 준비 없이 온 것이라 다음에 오겠다고 하고 돌아왔다. 나 또한 별 수 없는 자식이란 생각이 든다. 하룻밤도 못 자고 오는 나 또한 유구무언이라 천근의 무게가 나를 짓누른다.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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