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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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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9.04 17:30
  • 기자명 By. 충청신문
강희진음성예총 부회장
강희진음성예총 부회장

가을의 문턱에 접어드니 소속되어 있는 모임과 단체의 크고 작은 행사가 많다. 참석하다보면 많은 사람을 만난다. 분위기에 휩쓸려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도 하게 되고 어제처럼 상대방의 아주 작은 실수도 그냥 넘기지 못하여 기어이 지적하고 서운함을 토로하게 된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복기하며 성찰의 시간으로 아주 오랫동안 잠들지 못한다. 

처음 모임을 시작할 때는 그 자체가 좋아서 시작했고 누구를 만나던 즐겁고 행복했다. 내가 중심에 서지 않아도, 관심을 받지 않아도 서로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 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앞서서 이룬 선배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나도 저렇게 잘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그러다가 많은 시간이 흐르고 그 시간 속에 잠식당해 초심을 잃어버렸다. 이런 날은 내가 다니는 절에 간다. 그리고 경내를 돌며 조용히 침잠하는 시간을 갖는다.

불상 앞에 앉으니 지난번 들었던 스님의 법문이 생각난다. ‘도로(徒勞)아미타불’이란 말의 유래를 들었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 ‘도로’라는 말이 있다. ‘도로 시작하자’ ‘도로 간다’ 등으로 쓰는데 이것은 처음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그 유래는 신라시대 경흥이라는 왕사가 있었단다. 그는 어느 날 심하게 앓았는데 병명을 알 수가 없어 온갖 약을 써도 낫지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한 노파가 나타나서 그 병을 ‘도로병’이라고 했다. 그 노파는 왕사가 여러 가지 쓸데없는 곳에 신경을 써서 아픈 것이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 병이 나으려면 왕사가 되기 전의 처음 모습으로 돌아가 실컷 웃고 살면 된다고 했다. 그 후 왕사는 모든 골치 아픈 일들을 버리고 웃으며 살았더니 ‘도로병’이 나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수양만 하던 스님이 왕사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며 리더로서 얼마나 많은 역할을 했겠는가? 그 속에는 좋은 일만 있지 않았음은 자명하다. 유혹과 아첨과 비난 등 세속의 모든 것들과 함께해야 했으니 참선만 하던 스님으로서는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현명한 스님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왕사라는 자리를 내려놓고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런 분이기에 그 자리까지 갔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세속의 나는 마음을 다치고 끙끙 앓고 있으면서, 그 처방전을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고 자꾸만 더 더 움켜쥐려고만 한다. 그러니 어제처럼 성찰의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한때 내 좌우명이 뭐냐고 물으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한 구절을 말하고는 했다. ‘새는 알에서 깨어난다. 그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그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라는.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그 어떤 속박에도 벗어나 자유로운 사유를 하겠다는 것이었고, 언젠가는 알에서 깨어나 내 뜻을 펼치며 나답게 살고 싶다는 삶의 철학이었다. 오늘 생각하니 이런 내 삶의 방향을 언제 되뇌어 보았는지 까마득하다. 초심은 무언가에 덮여 씻어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

독수리의 우화가 생각난다. 모든 독수리가 40년을 살다 죽을 때 70년까지 살 수 있다는 방법을 안 독수리가 있었다. 어떤 독수리도 시도하지 않았지만 다시 태어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갔다. 부리로 바위를 쪼아 부리가 깨지고 빠지게 만들고, 그 새로 돋는 부리로 발톱 하나하나를 뽑고, 새 발톱이 돋아나자 그 발톱으로 날개의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내 새 깃털을 돋아나게 했다. 길고 긴 시간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한 독수리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여 크고 아름다운 날개를 펴고 마을로 돌아왔다는 우화, 그 이야기가 지금 나에게 교훈이 된다.

내 자신 ‘도로병’의 치료법은 이미 알고 있다. 경흥 왕사 스님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독수리처럼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봐야 한다는 답을 말이다.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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