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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겨울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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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12.18 16:55
  • 기자명 By. 충청신문
변정순음성수필문학회 회장
변정순음성수필문학회 회장

산골 겨울은 어둠이 빨리 찾아온다. 장작을 밀어 넣고 일찌감치 군불을 지핀다.기름보일러와 겸용으로 아궁이를 만든 황토방에는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겨울을 따스하게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군불을 자주 때지는 못한다. 모처럼 불을 넣으니 아궁이는 꾸역꾸역 연기를 내뿜는다. 눈물 콧물도 잠깐, 뜨거운 열기가 영하 7도의 날을 맥을 못 추게 만든다. 이 시간이야말로 최고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자아도취에 빠지는 시간이다. 뜨거운 불꽃에 마음을 빼앗기며 잠시 유년시절로 돌아간다.

그때 그 겨울날, 안채에는 밥 짓는 연기가 몽그락 몽그락 피어나고, 쇠죽 끓이는 사랑방 굴뚝에서는 황소 닮은 연기를 힘차게 내뿜었고 볏단을 써는 일과 쇠죽 끓이는 담당은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이어졌다. 아무래도 바깥일이기도 하고 큰 소를 다루는 일이라서 남자들의 몫이 되었다. 작두에 볏짚이 싹둑거리고 잘리는 걸 보면 그 일이 다 끝날 때 까지 할아버지의 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마음 졸였던 생각이 난다. 썬 볏짚을 쇠죽솥에 넣고 자투리콩과 콩깍지 한 삼태기와 맨 위에 쌀겨를 얹고 끓인다. 어느 땐 고구마와 늙은 호박을 넣고 끓인 여물을 고마움인지 연신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이며 먹는 암소를 그냥 바라만 봐도 배부르다 하시던 두 분, 가으내 농사일로 밭갈이 논갈이 실컷 부렸으니 농한기에는 정성들여 잘 먹이고 쉬게 하는 것이 소에 대한 도리이고 배려였을 것이다.  

나는 쇠죽 끓이는 아궁이 앞에서 노는 걸 좋아했고 부지깽이로 소두방 뚜껑을 두드리며 장단을 치며 노래도 불렀다. 그것도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트로트를 자주 불렀는데 언제 들으셨는지 한밤중 가족이 둘러앉아 있을 때 “우리 딸 노래 잘 부르더라 한번 불러봐.” 하시며 시키는데 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도 그 끼는 아직도 진행 중이고 싶다. 쇠죽을 다 끓이고 난 불씨를 화로에 가득 담아 방안에 들이면 싸늘했던 공기가 금세 훈훈해 졌고 우리는 화롯가에 빙 둘러앉아 석쇠를 걸쳐놓고 칼국수를 미는 날에는 국수 꼬리도 구워먹었다. 겨울철 주전부리는 주로 화로 옆에서 즐겼고, 장난도 많이 쳤다. 한번은 마당에서 오빠와 배구를 하다가 화로에 손을 집어넣어 손등을 데기도 하여 숙석을 떨기도 하였지만 좋은 일은 물론 소소한 사건들마저도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다. 화롯불은 또 음식조리며 난방, 심지어는 인두 다림질도 했다. 이렇게 나의 삶속에서 생활도구였고 가족 간의 정도 나누게 해 준 화롯불은 따스함 그 자체였다.

불씨가 서서히 사그라져간다. 큰 숯불부터 꺼내어 준비해놓은 화로에 담고, 그 위에 잔가지 숯불로 덮어씌우니 가득하다. 고구마를 몇 개 묻는다. 불이 괄은 탓에 금새 군고구마 냄새가 퍼진다. 구수한 냄새가 하늘만 빠끔했던 산골 고향마을 저녁풍경을 더욱 그립게 해준다. 올겨울은 엄청 춥다고 하는데 옛 고향의 포근한 겨울을 그리며 사는 날이 많아 질 것 같다.

이 겨울, 지금 내 앞에 있는 화롯불이 모든 이에게도 전해져 마음 따스한 겨울을 함께 보냈으면 좋겠다. 

몸과 마음이 훈훈해진다.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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