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기다려봐. 나랑 같이 갈 수 있는지"
5일 오전 6시 45분쯤 대전 동구의 한 인력사무소. 작업복 차림의 구직자가 집으로 돌아가려는 동료를 애써 붙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도 허탕을 치면 연속 사흘째라서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집에 생활비 갖다 줘야 하는데…" 담배 연기를 허공에 내뿜은 그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어두워 보였다. 밀리터리 바지를 입은 한 장년의 남성은 "기자 양반, 요새 일이 없어서 정말 죽겠다"는 말을 수차례 되풀이했다.
인력사무소가 위치한 상가의 복도에는 일감을 찾지 못한 20명가량의 일용직 근로자들로 북적였다. 6시부터 나와 기다렸다고 밝힌 김모씨(43)는 “작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였다”며 “올해부터 일거리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고 하소연했다. 주변 인력사무소 관계자들은 100명이 온다 치면 50~70명은 '빈손'으로 되돌아간다고 입을 모았다. 건설현장 비수기인 겨울철 풍경과 흡사하다.
장모씨(63)는 “작년 이맘때는 일을 하기 싫어서 일부러 안 가기도 했는데 지금은 일하고 싶어도 못한다”면서 고개를 떨궜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한 근로자가 한마디 말을 보탰다. “그때는 오히려 인력난을 겪었죠” 많을 때는 한 건설현장에서 20~30명가량 인부를 부르기도 했지만 요새는 이런 경우가 드물다는 설명이다.
인근 직업소개소도 상황은 비슷했다. 사무실 내부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일감을 찾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대부분 6시에서 6시30분 사이 호출을 받고 근무지로 이동했다. 남은 사람들은 ‘혹시나’하는 마음에 7시까지 기다려 보자고 결심했다. 이들은 모바일 게임을 하거나 담배를 태우며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만을 애태웠다. 소장은 "아마 대부분 돌아갈 것 같은데 미련이 남아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한 직업소개소 관계자는 "건설현장도 많이 줄었고 외국인들이 거의 독점을 해서 일자리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한 일용직 근로자의 말에서도 같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용운동이나 중리시장 바로 앞 아파트 건설현장 가보면 중국애들이 다 들어가 있는데 대부분 불법 체류자들이 많다"며 "정부가 단속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침을 튀기며 말했다. 지난해 5월 기준 건설업 종사 외국인 근로자 수는 22만 6391명이다. 전체 인력의 19.5%를 차지했다. 합법적인 경우만 합산한 것으로 실제로는 80%에 달한다고 한다.
허탕을 치는 날이 잦다 보니 인력소에 내야 하는 수수료도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한 남성이 소장의 눈치를 보며 기자에게 속삭였다. 일용직 근로자들이 보통 일당으로 13만원을 받는데 이 중 10% 수수료를 내면 손에 쥐는 돈은 11만 7000원이라고 한다. “순대국이나 먹으러 가자”는 권유에 손을 절레절레 흔든다. “예전에는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고 그랬는데 요새는 안 그래. 경기도 안 좋고 물가는 계속 오르니까”라고 했다. 7시가 넘은 시각, 대부분 '선택 받지 못한 사람'들은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각자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대전지역의 건설 경기가 좋지 않다. 2017년 대전 지역의 건설업 관련 업종 2404곳이 문을 닫았다. 국토교통부가 도내 종합·전문건설업체를 대상으로 지난해 1억원이상 원도급공사의 계약액을 조사한 통계에선 대전의 현장소재지별 건설공사 계약액은 4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국에서 가장 낮은 실적을 보인 세종(3조)의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