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어려서 배우는 것들
[아침을 열며] 어려서 배우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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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8.1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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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사람은 한 번 배워서 신념으로 굳어진 것을 여간해 바꾸려고 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기성세대들은 그 점을 잘 알기에 학습을 시작하는 어린이들에게 자신이 옳다고 여기고 있는 것들을 심어주려고 노력한다. 이는 가르침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갖게 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성향은 각 가정마다 나타나기도 하고, 특정 가문이나 지역에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국가 또는 민족 단위이다. 그래서 같은 국가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같은 민족들은 비슷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갖게 된 신념은 성장기를 거치며 다양한 경험과 독서, 학습 등을 통해 뒤바뀌기도 하지만 바뀌지 않고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려서 형성된 신념에 덧붙여 자신이 더 많은 학습을 하고 의지를 공고히 해서 확고한 신념으로 굳어지는 경우도 있다. 어려서 형성된 굳은 믿음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린이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떤 생각을 갖게 할 것인지의 여부는 국가 교육의 중요한 목표가 된다. 물론 국가의 교육 목표도 시대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내가 어렸을 때의 상황을 되돌아보면 개인보다는 집단, 특히 국가와 민족을 우선시 하는 교육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국난이 발생했을 때 자신의 목숨을 바쳐 국가를 살려낸 위인들의 이야기를 아주 많이 듣고 자랐다. 또한 당시 냉전시대의 체제 대립 속에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우월한 체제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반공교육도 집중적으로 받았다. 어린이 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을 대상으로 반공교육은 생활 속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다보니 당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랄 것 없이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살았다.

모든 국민들을 대상으로 집중 교육된 또 하나의 프레임은 ‘권선징악(勸善懲惡)’이었다. 착한 일을 하면 훗날 복을 받아 좋은 일이 생기지만, 악한 일을 행하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된다는 의식이다. 이러한 권선징악 정신은 우리가 어려서 들었던 모든 옛이야기와 설화에 예외 없이 녹아있었다. 또한 고전 문학작품의 경우도 한 결 같이 권선징악을 주제로 삼았다.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이야기로 듣고, 책으로 읽고, 만화나 영화로 보았던 ‘흥부놀부전’ ‘장화홍련전’ ‘심청전’ ‘춘향전’ 등의 고전은 하나같이 권선징악을 주제로 삼았다.

위인들의 살신성인(殺身成仁)과 멸사봉공(滅私奉公), 옛 이야기 속에 담긴 권선징악(勸善懲惡), 국가가 국민에게 요구하는 반공(反共) 등이 모든 교육활동 속에 스며있었다. 그래서 누구랄 것 없이 당시에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들은 철저한 국가주의자였고 반공주의자였다. 아울러 악행을 증오하고 선행을 동경하는 신념이 아주 강했다. 이렇듯 신념을 형성해주는 교육은 일상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시나브로 사라졌다. 구조화 된 신념을 갖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볼 때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특정 가치를 주입하는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참으로 불안해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늘 국가교육이 자신들이 어려서 배운 것과 같은 내용이 주입식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최근 들은 놀라운 이야기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듣자 하니 우리가 어려서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동화나 문학작품을 접하는 것과 비교되게 일본의 아이들은 어려서 주군의 복수를 하고 할복해 자결하는 사무라이의 이야기를 많이 접한다고 한다. ‘충신장’이라는 작품이 가장 유명한데 만화, 소설, 연극, 영화 등을 다양하게 제작돼 수시로 접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이 전달하려고 하는 주된 메시지는 ‘절대복종(絶對服從)’이나 ‘유혈복수(流血復讐)’ 등이다. 일본인들이 갖는 군국주의 사고방식, 잔혹함과 포악성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짐작이 간다. 우리 민족의 심성이 유난히 착한 것도 어떤 영향 때문인지 알만 하다.

일본은 여전히 발톱을 감춘 승냥이이다. 그들의 잔악한 본성은 언제 드러날지 모른다. 우리는 찬연했던 고구려의 영광을 재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일본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잠시라도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내려놓아선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여전히 극우정치세력을 지지하고 군국주의(軍國主義)를 신봉한다. 그래서 세계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면서 계속 우경화의 길을 선택하고 있다. 그들에게 군국주의와 우경화는 신념이다. 흥부처럼 착하게 살되 결코 사무라이의 기습에 대해 넋을 놓고 있으면 안 된다. 그들은 우리에게 좋은 이웃이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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