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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자연인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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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10.07 15:08
  • 기자명 By. 충청신문
강의를 나가고 있는 학교 학생들이 동아리 프로그램 일환으로 힐링캠프 행사를 한다고 초대장을 보내왔다. 장소가 먼 곳이기도 하거니와 행사가 많은 가을이라 망설이다 기차를 탔다. 아늑한 산자락에 있는 콘도하나를 빌려 마당에 무대를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말에 춥지도 덥지도 않다는 말이 있는데 오늘이 그날인 것 같다. 거기에 노을까지 아름답게 물들어 나무의자에 앉아 바라보고 있으니 오랜만에 평온함을 느꼈다.

요즘 취업해서 업무에 적응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딸들이 번갈아 가며 하소연을 한다. 때려치우고 산속으로 들어가고 싶단다. 산속에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왜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산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하는지 오늘 조금 이해 할 것 같다. 올려다보니 콘도를 둘러싸고 있는 산과 그 위로 그만큼만 보이는 하늘, 서쪽에 스러지는 붉은 노을까지 나 혼자만을 위한 세상인 듯 말 그대로 힐링이다.

지난번 친구들 모임이 있었다. 수다를 떨던 중에 남편들 이야기가 나왔다. 남편들이 가장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것이란다. 6명이 모였는데 5명의 친구들이 하는 말이었다. 남편들이 그 프로그램은 빼 놓지 않고 시청하면서 그들처럼 살고 싶은 로망을 갖는다고 했다. 남편이 리모컨을 쥐고 있으니 함께 시청할 수밖에 없다며 그들 중에 특이했던 출연자 이야기를 한참 했다. 그렇게 좋으면 남편한테 산속으로 들어가라 했단다. 그런데 계속 시청하다보니 누구에게도 간섭 받지 않고 뜻대로 하며 사는 삶이 멋진 삶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처음 그 프로그램을 접했을 때 내가 갖는 생각은 진종일 산에서 먹을 것을 채취하거나 재배한 것으로 밥 해먹고 사는 원시인 같은 사람의 이야기에 얼마나 공감 할 까였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가기를 좋아하는 남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음을 알았다. 자신들은 산속으로 들어가지 못하지만 자연인의 안식처에서 위안을 받고 싶었나 보다.

‘원시의 삶 속 대자연의 품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자연과 동화되어 욕심 없이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프로그램’이라는 의도를 가지고 제작했다고 한다. 제작의도처럼 출연자 모두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깊은 산속이나 무인도 섬에서 혼자만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돈키호테 같은 사람도 나오고 때로는 삶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는 삶의 이야기도 있고 안타까운 사연도 전파를 타고 있다. 벌써 367회방송이 나가고 시청율도 괘 높은 편이다.

우리의 삶은 고난과 스트레스의 연속이지만 털고 떠나기가 쉽지 않다. 하루에도 몇 번씩 때려치우고 싶은 직장,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계속 되는 일상의 지루함, 단 몇 시간만이라도 혼자만 쉬고 싶은 마음,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며 우리네 일상이다. 이런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이리라. 우리가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것은 고작 여행 정도이니 일상이 여행처럼 느껴지는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동경의 삶일 것이다. 그 모임 이후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재방송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보게 되니 마력이 있는 프로그램이 맞긴 맞는가보다.

아침 일찍 전화가 왔는데 작은아이였다. 어제 전화로 푸념과 짜증을 한바탕 쏟아 낸 후라 전화를 받기까지 그 짧은 순간 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다행이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병원이 너무 깨끗하고 친절해서 아빠 엄마도 이곳에서 건강검진을 한번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를 했다고 한다. 엄마한테 속상한 마음을 풀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다행이다 싶으면서 앞으로 살아가면서 수 십 번은 같은 말을 되풀이 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짠하다. 하지만 그것이 또한 삶임을 깨달은 시간도 있으리라. 잦은 태풍과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어수선한 가을이다. 하루빨리 태풍으로 인한 피해도 복구가 되고 농축산 농가도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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