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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회귀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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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3.09 15:32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혜숙 수필가
이혜숙 수필가
하천에서 부화한 연어는 6㎝ 정도로 자라면 바다로 내려가고, 3∼5년 뒤 성숙한다. 바다에서 성숙한 뒤 강으로 되돌아와 산란한다. 모천회귀성(母川回歸性)이 있으므로 반드시 부화하여 자라던 하천으로 돌아온다.

연어는 바다에서 자라지만 고향인 강으로 돌아와 생을 마감한다. 험난한 과정을 거쳐 강으로 돌아오기 위해 몸부림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작은 폭포를 넘을 때 실패를 거듭하지만 기어코 강을 거슬러 오르는 광경은 어떤 시련도 막지 못한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제가 살던 곳 쪽으로 향한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사람은 어디로 회귀하는 걸까. 사대육신은 지수화풍으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몸을 끌고 다니던 영혼은 어디로 가는 걸까. 노자는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영혼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새롭게 태어날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살아간다.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며 지면을 채워가듯이 태어나면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맑고 순수했던 색감과 도안으로 시작하면서 성장해가는 동안 조금씩 지면을 채운다. 지면이 다 채워질 때 세상과 작별하는 것 같다.

지면 안에는 아름다운 장면도 있고 가득 찬 희망도 있다. 열정으로 가득한 태양도 있고 고요한 달님도 있다. 시커먼 진흙도 있고 날카로운 가시도 있다. 활짝 웃는 꽃이 태양을 받아 반짝이는가 하면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태풍이 휘몰아치면서 낙화가 되기도 한다.

어느 시인은 이 세상의 삶을 소풍 왔다가 돌아가는 것이라 했다. 소풍은 설레고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인데 이 세상이 소풍처럼 아름답기만 할까. 그 시인은 맑고 순수한 영혼으로 살다가 갔기에 소풍이란 단어를 선택한 것 같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창회 때 외엔 별로 소식을 주고받지 않는 친구이기에 어쩐 일이냐고 했더니 대뜸 놀라지 말라는 말만 몇 번이나 한다. 놀라지 말라며 전해준 말을 작은 오빠가 심정지가 와서 119가 와서 싣고 갔는데 아무래도 가망이 없을 거라고 했다. 전날까지도 별일 없느냐, 건강해라 말하던 오빠였고 별다른 조짐이 보이지 않았기에 믿기지가 않았다. 소식을 듣고도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강하게 손사래를 쳤다.

강한 부정이 긍정으로 나타날 때 사람은 온몸에 힘이 빠지며 다리가 풀린다. 일말의 희망의 등불이 꺼지는 소리를 듣고 가는 길. 사지가 흐늘거리며 앉아있는 자체도 버거워진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조카딸이 내 품에 안겨 흐느낀다. 어느 자식이든지 부모가 살아있을 때는 원망도 하고 짜증도 내지만 부모가 떠난 자리에서는 잘못한 것만 생각날 것이다. 조카딸도 아침에 아빠한테 전화할 걸 못했다면 죄스러워한다. 어디 조카뿐이랴 모든 사람이 다 같은 마음일 거다.

대중탕에 가서 목욕하다가 저혈당 쇼크가 왔다고 한다. 연락처도 전화도 없으니 연락이 늦어진 것이란다. 남들은 죽음의 복은 탔다고 하지만 준비 없는 이별을 하게 된 우리는 받아드리기 쉽지가 않다.

칠십을 넘겼고 자식들 혼사는 다 시켰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잘못되어 코마에 빠지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하나. 오십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 올케를 생각하며 억지로 마음을 다스려 봐도 뻥 뚫린 가슴은 허공을 헤맨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어디로 가는 걸까. 기독교에서는 영생을 얻는다고 하고 불교에서는 업보대로 극락도 가고 지옥도 간다고 한다. 유교에서는 무릉도원에 간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오빠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신과 함께’라는 영화에서는 저승사자가 죽은 사람을 데려가면서 겪는 이야기를 소재로 만든 영화다. 저승사자와 가면서 이승의 모습도 보던데 오빠도 우리를 보고 있을까. 저승사자와 상면하는 장면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아기 때 동란을 겪고 폐허 된 나라에서 힘겹게 살아왔고 어려움을 이기기 위해 중동에까지 다녀올 정도로 정말 열심히 살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옛 어른들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했는데 오빠의 영혼은 어떤 마음일까.

연어가 모천을 찾아가기 위해 힘겨운 고행의 길을 걷듯 오빠도 그렇게 살아왔다.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오르며 모진 고난을 뛰어넘듯 수많은 사연을 엮으며 살아온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알을 낳고 산화하는 연어처럼 어쩌면 오빠도 어깨에 진 짐과 무거운 옷을 벗어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화한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언젠가 큰스님이 내게 화두를 주었다. ‘부모 미생 전에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너의 진면목은 무엇인가. 오빠가 부모미생전 진면목을 찾아 아름다운 회귀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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