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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고별강연하는 충남대 사회학과 김선건 교수

“시민운동은 생각에 신념이 더해져야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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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1.06.08 19:16
  • 기자명 By. 뉴스관리자 기자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학문적인 배움과 더불어 현실참여를 해야 진정한 지식인이죠.”

9일 저녁 고별강연을 끝으로 31년간의 교직생활의 짐을 내려놓는 충남대학교 사회학과 김선건 교수(66)가 생각하는 지식인의 모습이다.

‘새로운 길’과 ‘걸어온 길’, 그 사이에 서 있는 그를 만났다

김 교수는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아 홀가분하지만 기업이 원하는 상품을 만들 듯 경쟁구도로 변질된 현실이 안타깝다”며 “제자들과 학교를 두고 홀로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미소를 지으며 운을 뗏다.

그의 많은 논문과 저술활동에는 '현실참여'라는 주제가 관통하고 있다.

김 교수는 “'대학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대학의 사명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하다보면 현실세계와 맞닥뜨리게 되고 그러다보면 현실과 연관된 사회참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며 “학생들이 학문의 세계를 폭넓게 탐닉하지 못하고, 취업에만 골몰케 하는, 이 강퍅한 현실을 몸으로 막지 못하고 후배들에게 짐을 떠넘기는 것 같아 찜찜하다”고 안타까워했다.

대학에 오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는데 정작 대학에 와서는 대학생활을 즐기지도 못하고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제자들을 보면 미안하다는 것이다. 대학의 이념이나 가치를 생각해 기능적인 역할에 머물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현실사회에 참여하고 그런 목표를 위해 실천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그가 말하는 현실참여는 자신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 교수는“80년대 6월 항쟁이후 민주화교수협의회가 만들어 짐에 따라 지역 민교협을 만드는데 앞장 선 것이 현실참여의 시발점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일을 계기로 통일단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활동으로 이어지면서 상아탑 속의 지식인은 사회민주화를 위한 ‘투사의 대열’에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된다. 전문가 집단의 참여를 목말라했던 지역운동단체들에게 김 교수의 참여는 한줄기 빛이었다.

사실 그의 전공은 문화사회학이다. 문화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사람의 행위가 문화라는 것을 알면 왜 그가 문화적 활동에 열정을 보이는지 알 수 있다. 그 자체가 현실참여다. ‘참여하는 지식인’으로서 문화관련 시민단체인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를 오랫동안 맡았다는 것은 새로운 일일 수가 없다. 이야기가 있는 대전 원도심 문화지도 <문화 공간>과 300리에 달하는 <대전둘레산길잇기>를 제안하고 이뤄낸 것은 그 결과물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대전둘레산길잇기’와 관련해 “제안으로 끝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직접 참여 한 만큼, 아름다운 산들이 대전을 품고 있듯이 시민들도 산들을 온전하게 가슴에 품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또 문화지도와 관련해서는“옛것, 다른 사람들에게 잊혀가는 것에 대한 미련이 많아서 이런 작업들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며“원도심은 다른 번화가에 비해 경쟁력이 있다. 화랑, 소극장 등과 같은 문화적 공간이 그런 경쟁력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어 “특히 대흥동 화랑거리는 땅 값도 싸고 임대도 쉽기 때문에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활동하기 좋은 곳이며 이곳을 인사동처럼 만들 수 있다고 생각 한다”며 “대전에 살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시 지원을 받아 원도심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문화사회학자는 “모두가 화려함만 강조한 획일화된 모습으로 바뀌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학자다운 조언도 애써 감추지 않았다.

그는 이어“대전은 스스로 문화를 재생산하는 의지가 타 지역에 비해 모자라 자생적인 활동단체를 만들어 대전지역의 문화를 활성화 시켜야한다”라며“이러한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 서울중심에서 지역중심으로 바뀔 때 문화적 경쟁력이 있는 도시가 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시민운동은 시간, 돈, 노력을 모두 바치는 것이며 생각에 신념이 더해져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하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볼 수 있는 안목을 자신에게 선물한 것 같다”고 전공학문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글/김송희기자·사진/강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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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길, 새로운 가능성

웃을 뻔 했다.

퇴임 후엔 “좀 쉬고 싶다”는 말이 지난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수영) 정다래를 떠오르게 했다.

얄궂게도 정 선수의 수상소감은 “좀 쉽시다, 쉬고”였다.

만 65세 정년퇴임을 앞둔 노(老)교수 앞이라 난감했다.

“놀면서 먹물도 좀 빼고”

연타다. 피식 웃음이 샜다.

파안대소하는 노교수의 얼굴 깊이 팬 주름에서 30여년 시민운동을 해 온 고단함이 묻어났다.

‘편히 살고 싶다’는 짧은 한마디에 긴 삶의 무게가 실렸다.

때 이른 더위에 지친 7일 오후, 충남대 사회학과 연구실에서 김선건 교수를 만났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허연 턱수염, 등산용 바지를 입은 김 교수의 첫인상은 이웃집 촌부(村夫)에 다름 아니었다.

이리저리 자리를 권하고, 직접 내린 커피를 내오는 모습 어디에도 명망 있는 교수의 권위는 보이지 않았다.

9일 마지막 강의를 하고 나면 그는 교수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런데 날짜가 범상치 않다. 시민운동에서 잔뼈가 굵은 김 교수기에 24주년을 맞는 6·10항쟁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겠다 싶었다.

“우리 사회가 너무 보수적으로 치우쳐 있다”며 말문을 연 김 교수는 “1987년 성과로 어느 정도 민주화를 이룬 것은 맞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 민주화를 말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즉 “대기업 등에 의한 트리클다운(낙수효과)이 작동되지 않고 있다. 이건 중소기업을 쥐어짜 대기업 먹여 살리는 꼴이다. 복지체계도 마찬가지다. 가난한 사람들 돈 모아 부자 도와주는 식 아니냐”는 것이다.

노장(老將)은 이어 “OECD 복지수준으로 보면 (우리는) 아직 멀었다. 안정적인 복지체계를 갖추고, 사회적 약자들을 그물망 안으로 끌어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주대에서 4년, 충남대에서 27년.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그는 ‘지식인의 사회참여’를 강조해 온 학자로도 유명하다.

연간 1000만원 안팎의 대학등록금과 취업대란으로 시름하고 있는 20대 후학들에게 “긴 안목을 가져야 한다. 단순한 기능적 역할이 아닌 더 가치 있는 삶을 위해서도 사회참여는 필요하다”며 확신에 찬 말투로 충고했다.

또 그는 목소리 톤을 높이며 “지금 어렵다고 해서 현실에 매몰돼선 안 된다. 거기(현실)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삶의 방향도 모색해 봐야 한다”며 젊은이들의 열정과 도전을 주문했다.

느닷없는 전화 벨소리에 인터뷰가 잠시 중단됐다. 며칠 뒤면 강단에서 내려올 노교수의 삶을 정리하고 돌아보고자 했던 처음의 목적이 생각났다. 이제까지 걸어온 대학교수의 길에서 떠나야 하는 그에게 ‘길’을 물었다.

“길은 휴식이고 또 다른 가능성이다. 길을 걸으면서 휴식을 취하고 그 사이에 마음이 열려 나도 모르는 가능성이 도출될 수도 있다. 길은 새로운 방향을 찾아 나가는 것이다.”

간명했다.

아파트는 이제 지겹고, 흙을 밟으며 살고 싶다는 김선건 교수의 ‘소박한 퇴로(退路)’에 프로스트의 시를 꽃잎처럼 뿌려주고 싶었다.

먼 훗날 나는 어디선가 긴 한숨과 함께 말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중에서

/문승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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