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으로] 고사리 손
[문화속으로] 고사리 손
  • 충청신문 dailycc@dailycc.net
  • 승인 2020.07.1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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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숙 수필가
이혜숙 수필가
이혜숙 수필가
남편의 회사는 코로나로 휴업상태다. 1월에는 손님이 없다며 한 달 동안 쉬었는데 출근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지면서 다시 휴업하게 되었다. 휴업과 개업을 계속하고 있는 현실이 답답하다.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 코로나 확진자 수가 늘어나고 다시 휴업을 해야 하면서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더니 집안 구석구석을 치우고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병원에서 나의 척추에 퇴행이 왔다며 그간 몸을 많이 썼으니 아껴가며 살라는 의사의 말을 들은 후부터 일을 못하게 한다. 남편이 비닐 씌우는 것부터 고추심기 참깨 씨앗 넣기 등을 다하고 내가 거들어주는 정도이니 아주 편안해졌다.

시골 사람은 매우 부지런하다. 새벽에 일어나 논으로 밭으로 바삐 움직인다. 무늬만 농부인 나는 해가 중천일 때 기상을 한다. 아침 이른 시간 전화벨이 울린다. 주변 사람들은 늦게 일어나는 나를 잘 알기에 일곱 시도 안 된 시간에 전화하지 않는데….

전화를 건 사람은 수박농사를 짓는 지인이다. 수박 순을 따야 하는데 인력회사에서도 사람이 없다며 일손을 반으로 줄여서 보냈단다. 전전긍긍하다가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거란다. 나야 늘 비실거리니 남편만 와서 해주면 안 되겠냐고 한다. 혼자 안가는 남편의 성격을 알기에 부스스한 모습을 대충 정리하고 수박 하우스로 갔다. 먼저 온 사람들의 손길이 바쁘다. 우리도 애타는 그들의 마음을 알기에 부지런히 손을 움직인다.

수박은 모종을 심고 시간이 흐르면 여러 갈래의 순이 나온다. 한포기에 세 개의 순을 빼고는 다 제거해줘야 한다. 쉴 새 없이 나오는 새순은 5일에 한 번씩 따준다. 한 포기에서 여러 개의 수박이 달리지만 적과를 해서 한통의 수박만 놔둔다. 3월말에서 4월초에 모종을 심고 6월 중순경 수확할 때까지 끊임없이 새로 나온 순을 따줘야 상품의 수박을 수확할 수 있다.

일손은 없지 새순을 올라오지 지인은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애가 탄다고 했다. 우리 부부가 4시간에 걸쳐 수박 새순을 치는데 두 동의 하우스밖에 하지 못했다. 별거 아닌 것 같은데 한포기한포기 들여다보며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나머진 다른 사람이 할 거라고 그만 하란다. 앞 순은 우리가 할 수 있지만 끝 순은 잘 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했다. 일을 마치고 나오니 이제야 숨이 쉬어진다며 웃음을 짓는다. 내가 자주 아프다보니 도와준다고 해도 절대 하지 못하게 하더니 얼마나 애가 탔으면 나를 불렀을까. 옛날 어른들이 농사철에는 고사리 손이라도 빌려야 한다고 하더니 그 말이 실감났다.

언제부터인가 시골의 일손은 거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워주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오면 말도 통해서 편하지만 일손을 구할 수가 없단다. 코로나로 세계는 건강비상이지만 시골은 일손 비상이다. 대부분 동남아 사람들이 일손을 돕는데 코로나로 그들이 우리나라로 오지 못하면서 생긴 일이다.

전에는 우리나라 사람으로만 해결했던 농사가 이제 외국인이 없으면 할 수가 없다. 서로 도와가면서 농사짓던 말은 옛말이다. 이곳은 하우스가 많다. 대표 작물인 수박은 전국에서 인기가 제일 좋단다. 작년에는 수박, 토마토, 오이, 호박, 인삼밭, 고구마 밭, 파밭에 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보였는데 올해는 드문드문 보인다. 작물은 자라는데 일손은 모자라고 시간이 지나면 농작물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되니 농부의 마음은 타들어간다.

젊은 사람들의 실업률이 크다고 걱정하지만 시골에서는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요즘은 기계화된 농사공법으로 농사짓는 젊은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부모에게 빌붙어 캥거루 같은 삶을 살면서도 시골에서 일 할 생각은 왜 하지 않는 걸까.

농촌도 달라지고 있다. 옛날처럼 주먹구구식으로 농사짓는 게 아니라 체계적이고 기계화로 바뀌면서 시골도 자기 계발을 하고 보람차고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다. 직업을 구하지 못해 애태우지 말고 방향을 전환해서 농사일도 배우고 새로운 삶도 개척하는 것도 멋지지 않을까.

산책길에 우연히 딸기 농장을 보았다. 농대를 졸업한 20대 중반의 젊은 사람이 기계화된 시설을 갖추고 수경재배로 딸기를 열심히 키우는 모습이 멋져 보이고 알찬 삶을 사는 것 같이 보였다. 대견한 모습에 격려하고 딸기를 사 가지고 왔다.

하루 종일 일한 것도 아닌데 저녁때가 되니 몸이 무겁다. 부실한 건강과 손에 익지 않는 일을 하다 보니 몸에 무리가 갔나보다. 비록 몸은 피곤하지만 애가 타는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

세상은 역병으로 마음이 아프고 농부는 일손부족으로 마음이 아프다. 백신이 빨리 나와서 코로나가 진정이 되어 마음 편히 농사지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

귀엽고 앙증맞은 아기의 손을 고사리 손이라고 한다. 옛 어른들은 얼마나 바빴으면 아기의 고사리 손도 빌린다고 했을까. 일도 잘 하지 못하는 어설픈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들에게 작은 도움이 된 보람찬 날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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