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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학교 가는 길

김대유 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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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9.09 08:48
  • 기자명 By. 충청신문
김대유 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
김대유 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
학교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조개탄 난로와 양은 도시락, 손풍금 소리에 맞춰 메기의 추억을 부르고, 나머지 공부에 골머리를 앓던 곳, 흑백사진처럼 머물러 있는 유년의 삶을 온전히 지배한 것은 학교였다.

학교 가는 길은 온통 세상으로 가는 길이었고 방과 후는 집에 갔다가 다시 학교로 오는 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빛보다 빠른 IT 시대, 아이들은 게임 속으로 뛰어들고 보습학원은 학교에 우선하는 학교가 되었다.

코로나19는 학교 가는 길을 막았다. 0세에서 29세까지 코로나 사망률 제로인 한국에서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고 해서 죽을 일은 없을진대, 아이들의 죽음과 거리가 먼 정부의 학교폐쇄는 분명 아이들을 지키자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로부터 어른들을 보호하자는 것이리라. 초중고의 개학은 미루어지고 겨우 등교했다가 다시 부등교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인원이 대여섯명 밖에 안 되는 대학원 수업조차 허용하지 않는 대학들의 자발적 폐쇄로 고등교육기관은 좀비가 되었다. K방역의 우수성을 세계에 빛내기 위해 감염율이 오를 때마다 학교 가는 길은 막혔고, 집에서도 온라인 학습 잘되고 있다는 교육부의 보고가 메아리쳤다.

컴퓨터가 하나밖에 없는 집들의 두 아이가 실시간 온라인 학습에서 소외될 때 부모들은 가난을 탓했고, 맞벌이하는 젊은 부모의 외동아들은 게임의 왕국으로 불려갔으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한 번도 집밖으로 놀러가지 못한 중딩들은 우울증 증세가 심화되었다.

코로나 방역과 경제번영의 두 마리 토끼를 잡자고 노심초사하는 문대통령의 얼굴에 주름살은 깊어졌고, 수십번 고치고 또 고쳐서 발표했다는 부동산 정책으로 집값은 정권 초기에 비해 50%나 뛰었다. 광화문에 태극기 깃발이 다시 펄럭이고 목사들이 떼 지어 신도들과 만세를 부르던 것이 불과 보름전인데, 그 바람에 K방역은 무너져 내렸다. 밤9시 통금(경제활동 폐쇄)령이 내리면서 작은 가게들은 줄줄이 폐업하고 2,30대의 실업률은 다시 치솟았다. 방역도 경제도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렸다.

질병관리본부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의사들이 줄 사표를 내고 파업을 하는 나라에서 의사들이 대한민국의 코로나 정책을 장악하고 경제까지 마비시켰다. 아이러니다.

다시 학교 가는 길은 막혔다. 아이들로부터 어른을 지키자는 질본의 목소리에 가장 먼저 화답한 것은 교육감들이었다. 사망률이 제로인 학생들을 학교에 오게 하지 말자고 교육감들은 호응했다. 코로나 초기에 등교를 고수했던 어느 교육감은 언론의 뭇매를 맞은 후 입에 재갈이 물려졌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은 것은 코로나보다 더 두려운 일이니 등교를 강행하자는 일각의 주장은 마스크로 입이 봉해졌다.

선진국들의 고민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등교 여부를 놓고 고민이 깊어졌고 토론이 이어졌다. 그러나 어떻든 결론을 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등교 길을 막는 것이 코로나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보았다. 등교해서 코로나 확진률이 증가하더라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자고 결심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전면적으로 학교 가는 길을 열었고, 중국과 싱가포르 역시 개학을 결정했다.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개학을 허용했다.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 가정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들로부터 감염되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있다.

오랫동안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은 무엇이 되었을까? 한국사에 새로운 인류기를 써야 할 정도로 우리 아이들은 변하기 시작했다. 많은 초딩과 중딩은 게임으로 연결되어 자기들만의 네트워크를 은밀히 구축하였고, 고립된 고딩들은 턱에 마스크를 걸친 채 삼삼오오 떼 지어 동네 카페를 점령하기 시작했으며, 놀고먹는데 이골이 난 대학생들은 그대로 눌러 안자 온라인 학습만 하자고 대면수업 찬반을 묻는 설문지에 반대를 꾹꾹 눌러댄다.

학교는 상점보다 먼저 문을 닫았고 아이들은 어른보다 먼저 활동을 봉쇄 당했다. 학교 가는 길이 막힌 골방에서 카페에서 대학가 정문 앞 생맥주집에서 그네들은 어떤 인간이 되어가고 있을까? 이걸 묻는 교육감들은 한명도 없고, 조사를 하는 학자들이 없으며, 실태를 파헤치는 언론이 없다. 아이들은 어딘가에 있는데 보이지 않고 무슨 일을 하는데 뭐하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한국사에서 신인류가 등장할 날도 멀지 않았다.

코로나19는 유행이 될 수도 있다. 이 시기를 지나도 코로나 20,21이 언제 올지 모른다. 그 때마다 우리 정부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학교 가는 길을 막을 것인가? 모범적인 K방역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을 집에 묶어놓는 일을 반복할 수는 없다. 학교는 상점이나 공공기관보다 더 중요한 기관이다. 교육감들은 학교 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 정부와 의사들이 학교폐쇄를 거론하기도 전에 가장 먼저 학교 문을 닫자는 교육감들은 질본에 자리를 넘기고 집으러 가야한다.

교육감들은 어떻든 마지막까지 아이들을 등교시키려고 발버둥치고 아이디어를 내고 버티다가 그래도 할 수없이 학교 문을 닫게 되면 그 때는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가라. 학교 가는 길은 열려야 한다. K방역이 손상되어도 확진자 비율이 높아져도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한다. 학교 가는 길을 막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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