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평가한 것처럼, 우리나라는 강한 국민정체성을 가진 나라이다. 국가에 위기가 닥칠 때면 예외 없이 나타났던 우리의 의병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犬糞蒼衛(개똥이나 먹어라)’는 이름으로 재치있게 저항했던 장삼이사들은 우리나라의 국민정체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다.
강한 국민정체성은 자랑스러운 역사에서 비롯한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의 당당한 모습이 담긴 사진, 전사한 전우의 군번줄을 들고 오열하는 군인의 모습,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열망으로 거리에 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했던 많은 운동가들... 역사에 기록된 이들의 모습을 읽으면서 우리는 가슴 찡한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의 총체가 국민정체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보훈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한 국민정체성을 세우는 토대라고 볼 수 있다. 국가를 위하여 헌신하신 분들을 위한 무한 책임진다는 약속과 그 분들의 희생과 공헌을 전 국민이 함께 기억하여 국민통합에 기여하겠다는 의지가 ‘든든한 보훈’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국민정체성은 위기상황에서 더욱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방역을 위한 통제가 매우 일사불란하게 잘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이고, 이는 국민 한분 한분께서 그 통제에 스스로 협조해주신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자발적인 협조는 어디에서 오는가. 어떤 이들은 오랜 왕조의 경험과 독재정권의 잔재로 인하여 관민 협조가 수월한 것이라며 깎아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독재정권을 물리친 경험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저런 평가에는 동의할 수 없다. 우리의 자발적인 협조는 강한 국민정체성에서 온 것이다. 불편하더라도 마스크를 쓰고, 심심하더라도 집에 머무름으로써 우리의 공동체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머무름’은 먼 훗날 자랑스러운 역사로 남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추석이지만 부모님을 뵙고 싶은 마음을 영상통화로 대신하는 여러분 한분 한분은 자랑스러운 역사의 한획 한획이다.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