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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세계 일류 DNA 심은 이건희

허재삼 작가·공인중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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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11.10 16:06
  • 기자명 By. 충청신문
허재삼 작가·공인중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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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캠핀스키 호텔로 삼성 사장들과 임직원 200여 명을 불러 모아 회의를 주재하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신(新)경영 선언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지금까지도 삼성 60년사에서 세간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 회장의 어록이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삼성 제2창업을 선언했다.

그는 앞서 세탁기의 불량 부품을 칼로 깎아 조립하는 사내방송을 보고 격노했었다. 이 회장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감한 결단이었다. 독창적인 발상으로 오너가 아니면 내릴 수 없는 결단으로 지금의 삼성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용산구 자택에서 쓰러졌던 이 회장이 10월 25일 타계했다. 갑작스런 이 회장의 타계에 대해 각계각층에서 “이건희 1등 정신은 삼성그룹뿐 아니라 우리 산업과 사회 전반에 자긍심을 불어넣고, 동시에 자극제가 됐다”며 추모하는 ‘이건희 신드롬’이 일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젊은 대학생들은 그를 ‘현대판 이순신’에 비유하며 구국의 영웅으로 칭하고 있다.

이 회장은 45세 때인 1987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에게서 경영권을 물려받아 2014년 병석에 눕기까지 27년간 삼성그룹을 이끌며 글로벌 1등 기업으로 키워냈다. 삼성이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이 회장의 탁월한 리더십과 임직원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이뤄낸 혁신 여정은 한국 산업계에 새로운 성장 모델이자, 자극제 역할을 했다.

“반도체가 조금 팔려서 이익이 난다고 하니까 우리가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자만에 빠져 있다.” 이 회장은 지난 1996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며 이같이 질책했다. 삼성은 1994년 국내 최초로 경상이익 1조원을 돌파, 1995년에는 3조5400억 원으로 늘었다.

이 회장은 호황기에 사장들에게 현재에 자만하는 대신 오히려 위기 절감을 주문한 것이다. ‘이건희 경영’의 핵심 키워드로 혁신·속도·인재 등이 꼽힌다. 누구보다 외부 소통에 적극적이었으며 주1~2회 최고 전문가들과 식사하며 그들 얘기를 듣는 것을 가장 즐겨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회장이 경영의 고비마다 최고의 카드로 꼽은 것은 ‘위기를 공유하는 게 경영의 핵심’이라고 믿은 것이었다.

이 회장은 경영진이 판매량 증가에 만족하자, “우리는 자만심에 눈이 가려 위기를 진정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대로 가다간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내가 등허리에 식은땀이 난다”고 말했다. 병으로 쓰러질 때까지 위기 경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 회장은 심근경색으로 의식을 잃기 7개월 전인 2013년 10월 열린 신 경영 20주년 만찬회에서는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변방에 머물러 있던 ‘메이드 인 코리아’의 적당주의와 이류 의식을 과감히 깨부수는 혁신 경영의 전형을 보여줬다. 이는 비단 삼성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산업계와 한국 사회에 ‘코페르니쿠스의 전환’과도 같은 충격을 던져주었다.

2003년 전체 판매량의 27%에 달하는 브라운관 TV 생산을 중단한 적도 있다. 당장 매출에 손실이 가더라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대에 디지털TV로 승부하겠다는 뚝심이었다.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처음 등장해 세계 휴대폰 전화 시장이 급변할 때도 머뭇대지 않고 발 빠르게 흐름을 따라잡아 삼성전자를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스마트폰 강자로 만들었다.

글로벌 초일류에 대한 이런 집념이 오늘날 삼성전자의 반도체·휴대전화·TV 사업을 세계1위로 성장시켰고, 삼성의 브랜드 가치를 세계 톱10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산업을 시작할 당시, “TV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들면서,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며 반대 목소리가 컸다고 한다. 그러나 이 회장은 “언제까지나 기술 속국으로 있을 순 없다. 사재를 보태겠다”며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결국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기업사와 기업인의 궤적에 명암(明暗)이 없을 수는 없다. 훌륭한 정치 지도자나 기업 경영인 누구에게도 공과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회장은 누가 뭐라 해도 대한민국 경제사에서 최초로 한국 기업의 위상을 글로벌 톱 플레이어의 반열에까지 끌어올리며 거대한 족적을 남긴 거인이었다. 한국 경제 발전사의 한 획을 그은 큰 지도자였다. 우리도 ‘세계 1등’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언제 무너지고 사라질지 모른다는 그의 메시지는 그가 떠난 이후에도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회사를 세계 일류로 키운 남다른 재운의 소유자인 그는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을 이룬’ 화려한 재벌로 보였을지라도, 실상은 대중의 따가운 시선에 언제나 고독함을 느꼈던 평범한 이웃집 보통사람 이었을 것이다. 이 회장은 별세했지만 그가 대한민국 기업과 사회에 남긴 족적은 영원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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