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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풀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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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10.31 14:13
  • 기자명 By. 충청신문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많이 사랑하고 보듬어도 부족한 것이 인생이라 한다. 요사이 계절에 동승 된 맘인지 아니면 나이 탓인지 확실한 계기는 모르겠으나 주위 동료들에게서 자주 안타까움을 발견하곤 한다. 배움의 주머니가 아무리 대단하여도 타고난 성품은 모태에서부터 형성되는가 보다. 시간이 태엽을 감아서 제자리로 가듯이 인간도 시간의 정점에서 처음의 그 자리로 어쨌든 회귀한다. 신중해야 함을 우리들의 나이는 경고한다. 잘 들이지 않으니 더욱 경청해야 하고, 보이지 않으니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기억이 어두워지니 반복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의 수레바퀴가 헛걸음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묘비명이 있는데 풍자와 독설로 한 시대를 풍미한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아흔네 살에 남긴 마지막 유머는 ‘우물쭈물 살다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이었고, 그리고 기인으로 불렸던 중광 스님의 묘비명은 ‘괜히 왔다 간다’이었다.

바람을 노래하는 억새풀을 나는 좋아한다.  햇빛이 잘 드는 풀밭에서 큰 무리를 이루고 사는 대형 여러해살이풀인 억새풀은 갈대와 비슷하지만 다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의 색깔이 흰색에 가까우면 억새이고 키가 크면서 꽃의 색깔이 갈색에 가까우면 갈대이다. 그리고 가운데 잎맥에 하얀 선이 두드러지는 것이 억새이다.

고등학교 시절 자전거를 타고서 시골길 강둑의 코스모스 꽃길을 가을날에 달리다 보면 엉망진창이지만 삐죽삐죽 솟아난 억새풀이랑 물가 쪽으로 자리한 갈대들이 석양을 등지고 흔들거리는 그 자태가 너무나도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바라보는 그 순간이 참으로 행복하였었고 흰머리 풍성한 지금도 가을날의 억새풀이 늘 그립다.

지치지 않고 흐트러짐 없는 10대 시절의 내가 바라보았던 나의 억새풀의 그 고고함을 지금껏 내 삶의 중심으로 여기고 살아왔었다. 쓰라림이 모질게 쏟아지고 쏟아져도 마침내 도달하게 되는 한 생명의 끄트머리는 늘 황홀하고 아름답다. 내 삶의 억새풀도 지난 세월 동안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도달하게 된 나의 많은 수고스러움을 위로하고 어루만지고 달래주었다. 살다 보니 우연이 존재하였고 존재하는 삶의 희망이 우연으로 인하여 인생의 숨 고르기로 존재하였으므로 우리는 모두 삶의 설렘을 품고서 사는 것이 아닐까!.

널찍한 거실의 창에 쌓인 먼지와 덕지덕지 붙은 때는 1년에 한두 번은 반드시 닦아낸다. 쌓인 먼지가 햇빛을 차단하기도 하고 집안 분위기를 칙칙하게 만드니 전문가에게 의뢰해서라도 늘 가꾼다. 인간의 욕심도 고약한 심술도 부지런히 닦아내고 선한 마음으로 광택을 입혀야 한다.

요사이 가을에 분홍색으로 바뀌는 신비롭고 새로운 가을의 핫플레이스인 핑크뮬리(Muhlenbergia Capillaris) 라는 꽃이 늦가을 정취를 달래고 있다 핑크뮬리는 억새와 닮아서 '분홍억새'라고도 하는데 학명은 ‘Muhlenbergia Capillaris’이다. ‘Capillaris’는 ‘머리카락 같은, 머리털의’라는 뜻의 라틴어 ‘Căpilláris’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름처럼 가을에 꽃이 피면 산발한 분홍색 머리카락처럼 보인다. 영어로는 헤어리온 뮬리(Hairawn muhly), 걸프 뮬리(Gulf muhly) 등으로도 불린다. 사람들의 마음과 눈을 황홀하게 어루만져 주는 신비로운 핑크뮬리는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이유로 환경보호단체와 지자체에 의해 요사이 많이 폐기되고 있다. 사람다운 사람들이 사는 세상과 핑크뮬리는 같다. 버려야 할 것들을 인생 버킷리스트로 설계해보는 것은 어떠한가! 왜 대부분 사람은 하고 싶은 것을 인생의 마지막 버킷리스트로 설정할까! 내 삶의 마지막 바벨탑은 핑크빛 뮬리가 아닌 아름다운 으악새가 될 것이다.

니콜라이 교수는 카이스트를 졸업한 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한국에 다시 돌아와 지난해 특별 귀화해 현재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자유로운 생활과 연구 환경을 동경해 갈수록 해외로의 인재 유출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출신 박사급 인재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다니 신기하다. 아마도 요즈음 BTS, 블랙핑크, 오징어 게임 등 문화 예술에 반해서 한국에 살고 싶어 하는 외국인이 증가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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