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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될까, 나비가 돼 볼까… 숲이 길러내는 건강한 동심(童心)

교사도 프로그램도 없는 숲 활동 통해 아이 ‘그릇’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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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1.10.11 19:11
  • 기자명 By. 문승현 기자

 

 

-[사진] (上)서산지역 유치원, (下)대전지역 유치원

 

 

-숲유치원… 대전·서산지역 유치원 실험적 선두주자로 나서

 

“똥이다”

한순간에 아이들이 모여든다.

“우와 신기하다”

똥이 신기하다니...

“먹으면 안 돼요. 이건 고라니똥이에요”

선생님의 말이 차분하다.

별 것 아니라는 투다.

그것도 잠시.

네살 풀잎같은 녀석들이 금세 제각기 알아서 논다.

흙을 파고, 솔방울을 모으고, 잠깐 투닥투닥 대거리하다 울기도 하고 그야말로 난장이다.

손이고 바지고 신발이고 흙투성이다.

하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고 신경 쓰지 않는다.

흙은 털어내면 그뿐.

? 숲유치원, 우리나라는 아직 걸음마 단계

파란 하늘은 높고 가을볕은 따스했던 지난 4일 오전 10시 대전의 한 어린이집을 찾았다. 올 3월 문을 연 이 곳은 (사)숲유치원협회와 산림청이 주관하는 2011학년도 ‘숲유치원 시범운영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숲유치원’은 아이들이 시멘트 벽돌로 이뤄진 인공적인 공간을 벗어나 숲에서 뛰어놀며 자연과 교감하는 체험 활동에 방점을 둔다. 해외에서는 유럽 선진국을 중심으로 독일에만 1000여개의 숲유치원이 있고, 일본에서도 350여곳이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부터 부산대 부설 어린이집을 중심으로 생태유아교육 프로그램들이 개발.적용돼 왔다. 2002년 6월 생태유아교육운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생태유아교육학회’가 설립되면서 수도권과 광주, 대구 등지로 참여기관이 확산됐다.

지역에서는 대전 관저동의 어린이집과 충남 서산 소재 유치원이 자체 숲을 활용한 숲유치원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숲유치원협회 대전지회 발기인대회가 열려 지역에서의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관저동의 이 어린이집은 자연의 품에서 눈보라와 비바람을 이겨낼 수 있는 건강하고 튼튼한 아이들을 길러내고자 구봉산 자락에서 숲 활동을 하고 있다.

반별로 다르지만 매일 1시간 30분 정도 숲에 ‘그냥’나간다. 특별한 프로그램은 없다. 교사의 가장 큰 역할은 안전사고 방지다. 그 외 영어나 예체능 등은 가르치지 않는다. ‘유아조기교육을 생각하는 학부모라면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이 유치원이 말하는 이유다.

상쾌한 오전 10시 10분, 아이들은 숲에 나가기 위해 준비운동이 한창이다.

“오늘은 풀이 되어볼까, 나비가 되어 볼까”

체조라고는 ‘국민체조 시~작’으로 시작하는 기계 같은 체조밖에 모르는 기자는 ‘세상엔 저렇게 예쁜 말로 만든 체조도 있구나!’싶다.

저마다 발을 구르고, 팔을 털다가 나비처럼 날아갈듯이 날갯짓도 한다.

? 숲에선 나뭇가지도 돌멩이도 놀잇감

숲으로 가는 길.

숲해설가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고염 열매를 따서 먹어보고, 마 씨를 얼굴에 붙이며 도깨비 놀이를 하기도 한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피어난 이름 모를 꽃들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은세(6·여)는 어디서 잡았는지 청개구리 한 마리를 노란 플라스틱 가방에 넣고는 마냥 좋아했다.

이번엔 하늘정원 놀이다.

대여섯명 아이들이 일렬로 늘어서 한쪽 손은 앞 친구 어깨를 잡고, 한 손은 거울을 든다. 코 위로 올려든 거울을 쳐다보며 천천히 걷는다. 손바닥만한 거울에 푸른 하늘이 쏟아져 들어온다. 앞에 선 친구를 믿어야만 할 수 있는 놀이다.

숲에 들어서자 키 큰 나무들이 아이들을 품는다. 6세반 아이들은 흙바닥에 철퍼덕 앉아 뭔가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지천으로 깔린 나뭇가지와 솔방울, 돌멩이로 만든 것은 누군가의 얼굴이고 폭포고, 우물이다. 폭포를 만든 관영이(6)는 떨어지는 물을 몇 가닥 솔잎가지로 표현하고, 그 옆에 우물도 하나 만들었다.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는 관영이의 얼굴이 진지했다.

시은이(6·여)는 흙을 끌어다 솔방울을 열심히 덮는다. 내일 다시 와서 물도 준단다. “백밤 자면 여기서 무궁화가 나올 것”이기 때문. 돌멩이 씨앗을 심은 소윤이(6·여)는 “튤립이 나온다”며 시은이랑 같이 물을 줄 거란다. 소윤이를 따라 웃었다.

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 연구에 따르면 숲유치원 출신 아이들이 동기부여.창의력.집중력.사회성 등에서 일반유치원을 다닌 아이들보다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숲 속 작은 벌레나 곤충, 새소리 등 자연만물을 관찰하면서 탐구력과 함께 창의성도 발달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 숲유치원 관련 인식·정보 아직 부족…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만만치 않다.

숲유치원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아직 걸음마 상태다보니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교사는 교사대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숲 활동을 하다보면 아이 옷이나 신발이 더럽혀지는 것은 기본, 가끔은 벌레에 물린다거나 작은 상처도 입는다. 학부모도 교사도 가장 두려움을 갖게 되는 부분이다.

서산의 유치원 관계자는 “숲 활동에 대한 인식과 정보가 부족해 활동 초기에는 교사와 부모 모두 힘들었다”며 “전문 인력 확보를 위한 교사 연수와 함께 학부모들의 인식 변화를 위한 지속적인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유치원별로 천차만별인 시설이나 규모, 지리적 위치 등은 민간 차원에서 극복하기 힘든 문제다. 대전과 서산의 보육시설들은 위치적으로 숲에 근접해 있거나 자체 숲을 이용할 수 있어 숲유치원 도입이 가능했던 측면이 있다. 지난 7월 산림청이 제정·공포한 ‘산림교육의 활성화에 관한 법률’에 기대를 품게 되는 이유다.

산림청 관계자는 “대전의 경우 정부청사 숲에서 숲해설가들이 주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한 무료 숲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내년에는 대전에서도 민간이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숲유치원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꿈결처럼 한 시간 반이 지났다. 아이들은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날 기미가 없다. ‘이제 가자’하는 선생님 말도 들리지 않는가보다. 그렇게 놀고도 아쉬울까.

이젠 어린이집으로 돌아가 씻고 밥 먹고 낮잠 자는 일만 남았다. 새맑은 꼬마들은 여전히 쌩쌩했다.

“숲속 친구들아 안녕~”

아이들이 지저귄다.

“그래, 내일 또 놀러 오렴”

시원하게 뻗은 엄마 숲 나무들이 대답하는 듯했다.

/문승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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