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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추상명사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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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12.19 14:18
  • 기자명 By. 충청신문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특징은 여럿이다. 그 많은 특징 가운데 호모사피엔스가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던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고, 코로 냄새 맡거나 혀로 맛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을 개념화했다는 점이라고 한다. 즉, 추상(抽象)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추상이란 실체가 없지만, 그것을 인지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추상이란 ‘사랑’ ‘희망’ ‘소망’ ‘행복’ 등과 같은 개념이다. 인간은 그것을 느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지만, 그것은 실존하지 않기 때문에 오감(五感)을 통해 경험할 수는 없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동물도 추상을 개념화하지 못한다. 오직 인간만이 추상이 가능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추상을 통해 인간은 의식이 성장했고,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추상은 인간의 진화를 가속한 결정적 능력이기도 하다.

추상적 개념을 나타내는 말을 추상명사라고 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인간은 추상을 공유하는 능력으로 만물을 지배하는 힘을 갖게 되었다. 추상은 인간이 본연적으로 가진 능력 이상의 능력을 갖추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그래서 추상명사를 통해 공감하고, 공유하는 능력을 향상했다. 인간은 어떤 형태의 모임을 만들면 반드시 함께 공유할 추상명사를 만들고, 그것을 향해 매진한다. 그것을 가치의 공유라고 한다.

하지만 절대 추상명사를 말하지 말아야 할 부류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부류가 정치인, 정치세력이다. 정치는 추상명사를 거부해야 한다. 손에 잡히는 실체를 안겨야 한다. ‘꿈’ ‘희망’ ‘행복’ ‘미래’ 등을 자주 운운하는 정치인은 좋은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는 추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는 현실이고 실존이며 실체이다. 무지개나 뜬구름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구체적 실체라야 한다. 정치가 추상명사로 가득해지면 공허하고 헛바퀴 질만 거듭할 뿐이다.

선거철이 시작되었다. 내년 상반기 중 대선과 지방선거가 연이어진다. 각종 매체를 통해 후보자가 자신의 공약을 발표하고, 소신을 밝힌다. 그들이 밝히는 공약이나 비전을 살펴보면 아주 구체적이어서 실행을 담보하는 내용을 밝히는 후보가 있는가 하면, 시종 추상적인 뜬구름만 말하는 후보가 있다. 행복한 미래로 가자는데 도대체 무얼 어떻게 해서 행복하게 하겠다는 것인지, 미래는 어떤 미래인지 아무런 실체가 없는 말만 쏟아내는 후보가 있다.

단호하게 말하건대 표를 통해 심판받겠다고 선거 무대에 오른 후보라면 추상명사 없이 보통명사로 말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추상명사 위주로 말하고, 공약을 발표하는 것은 그가 지향하는 목표가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밝히는 것이다. 그가 자리에 오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실질적인 준비는 미흡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승리하고 자리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할 뿐 선출직에 당선된 후 무엇을 어떻게 실행하겠다는 구체적 계획이 없는 상태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언론매체나 개별 사회적 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서 각종 선거를 준비하는 이들의 메시지가 노출된다. 이들 중 일부는 시종 추상명사만 늘어놓는다. ‘행복한 세상’ ‘밝은 미래’ ‘꿈을 펼치는 세상’ 등 무지개 같은 이야기만 열거한다.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음을 인정하는 꼴이다. 추상명사로 자신을 드러내는 후보자는 준비가 안 된 자이다. 그들을 지도자로 뽑는 순간, 우리는 다음 선거까지 뜬구름만 좇으며 허송세월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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